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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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는 어떻게 음악을 듣게 만들었을까

D.H.Jung 2011. 5. 1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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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음악 듣는 귀를 살려낸 비결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2006년 한 가수가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올랐다. 그녀는 노래를 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시작된 '거위의 꿈'. 바로 인순이가 재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음악 자체에 푹 빠진 채 노래를 열창했다. 그러다 "이 무거운 세상도-"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짧은 순간 음을 놓쳤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였을 것이다. 그 노래를 하는 그 때 그녀는 이 짧은 노래 속에서 수십 년 간 '자신을 묶어두었던 무거운 세상'을 느끼는 듯 했다.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해 담담히 인사하고 불빛이 쏟아지는 무대 밖으로 나갈 때 언뜻 눈물을 훔치는 그녀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잡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게시판에 호평이 쏟아지고 그녀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로 퍼 날라졌다. 인순이는 과거에도 그렇고 그 때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런 놀라운 가창력의 가수다. 하지만 그 무대 이전까지 인순이는 평가절하 되어 있었고, 그 무대에 선 이후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그 후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아이돌이나 힙합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가수가 되었다.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많은 사람들이 음악은 작곡가나 작사가 혹은 가수 그리고 프로듀서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한다. 즉 그들에 의해 음악은 완성되고 그것을 우리는 선택해 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이 음악 역시 그 완성은 대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들어지는 소리와 음과 비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걸 듣는 귀다. 인순이의 노래가 달리 들린 것은 노래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걸 듣는 대중들의 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인순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더 집중해서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그러자 늘 배경음악처럼 훅 지나가버리던 음악은 대중들의 귀에 꽂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라이브 무대에서 들으면 깊은 감동이 몰려오다가도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듣게 되면 그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물론 그 라이브가 주는 직접적인 음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TV라는 공짜 미디어가 갖는 산만한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돈 내고 음악을 들으러 극장에 가는 사람은 이미 그 귀가 준비되어 있지만, 그저 틀어놓으면 흘러나오는 TV 음악 프로그램에 귀는 좀체 준비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성공을 얘기하면서 우리는 흔히 중견 가수들의 놀라운 가창력을 말한다. 맞는 얘기다. 이 오디션 형식의 무대는 중견 가수들조차 잔뜩 긴장하게 만들어 그 집중력을 높여놓기 때문이다. 곡에 대한 해석이 과감해지고, 짧은 시간 동안 혼신을 다해 부르는 그 무대에서 가수들의 가창력은 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가창력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의 노래를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프로그램의 힘이다. 본 경연이 시작되기 전, 서로의 심경이나 그간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당일에 차에서 내려 자신의 대기실에 대기하면서 갖는 긴장감을 포착하면서 서서히 집중력을 높여놓는 이 프로그램의 전반부는 그래서 경연 무대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또 경연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가수들의 반응과 관객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이 느슨해지고 흐트러질 수 있는 TV라는 매체의 긴장감을 끌어올려 끊임없이 대중들로 하여금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하게 만들어준다.

사실 중견가수들의 무대는 늘 있어왔다. 즉 '콘서트 7080'이나, '열린 음악회',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프로그램은 늘 중견가수에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무대가 '나는 가수다'만큼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가수도 있고 노래도 있었지만 대중들의 귀를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의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듣는 음악을 지향하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라라라'나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자정에 편성됨으로써 대중들의 주목에서 멀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가수다'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이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서나, 편성시간대를 통해서나 대중들의 TV를 통해 음악을 듣는 귀를 되살려놓은 것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