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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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목소리만 들어도 맛있다

D.H.Jung 2011. 6. 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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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최불암 목소리에 침이 고이는 이유

'한국인의 밥상'(사진출처:KBS)

도대체 최불암의 목소리에는 고소한 참기름이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정말 신기한 일이다. 단지 내레이션만 들었을 뿐인데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만일 내레이션에도 어떤 급이 있다면 최불암은 단연 최고 등급의 공력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마치 밥처럼 담담하기 그지없는 프로그램에 때론 고소한 참기름 향내를 더해주고, 때론 훈훈한 밥의 온기를 전해주는 최불암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이 프로그램을 진수성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밥상'에 깔리는 최불암의 내레이션은 잘 들어보면 이미 입 안 가득 침이 고인 듯 찰기가 흐른다. 그래서 그걸 듣는 사람 역시 똑같이 입 안에 침이 고이게 만드는 것일 게다. 전국에서 찾아낸 우리네 밥상 앞에서 마치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그래서 내레이션이라는 기능적인 장치 그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밥상을 소개하면서 그걸 보고 듣는 이들의 식욕을 당기게 하는 것만큼 가장 큰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그 식욕을 만들어낼 정도의 찰기 있는 목소리는 지나치지 않아 자극적이지 않고, 심지어 담백하게 느껴진다. 이것은 찰기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또박 또박 한 마디 한 마디 마치 대사의 맛을 살리듯 읽어내는 최불암의 단단한 발성에서 비롯된다. 식욕이 느껴지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함을 주는 목소리는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그대로 살려내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대표적인 음식을 소개하면서도 기성의 시끌벅적한 음식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한다.

최근 '트루맛쇼'라는 다큐멘터리가 들춰낸 음식 프로그램들의 치부는 우리가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자극에 머물러 있는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밥상'은 이 상품으로 전락한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가치로 복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결정 맛 대 맛'이나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음식 버라이어티쇼나, 저녁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VJ특공대'식의 음식소개 코너들이, 음식 자체를 제대로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욕망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한국인의 밥상'은 지극히 담담하게 음식 그 자체의 의미에 더 집중한다. 마치 음식으로 치면 패스트푸드의 맛이 아닌 슬로우푸드의 맛처럼 이 프로그램이 담담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을 유지하는 것은 이 조금은 완고한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고함과 진지함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만들어내는 건 역시 최불암이라는 존재다. 내레이션 중간에 갑자기 화면 속으로 쑥 들어와 버린 것처럼 거기 서 있는 최불암은 목소리에 연기까지 덧붙인다. 어느 시골길에서 혹은 어느 어촌 바닷가에서 혹은 어느 산사에서 마치 전국의 음식을 진지하게 연구하려 돌아다니다 멈춰선 듯한 최불암은 설명 중간 중간에 특유의 표정과 제스처를 집어넣는다. 때론 허허로운 웃음을 내레이션에 넣음으로써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꽉 찬 정보전달에 여백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신들린 듯한 내레이션을 더더욱 맛나게 만들어주는 건 대사다. 마음으로 먹는다는 사찰음식과 스님들의 수행을 "억지로 물을 내지 않아도 익어가며 물을 내는 열무김치처럼" 같은 적절한 표현으로 쓰여진 대사는 최불암의 목소리와 착착 맞아 떨어지며 감칠맛을 더하게 해준다. 그래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맛좋은 상차림은 단지 음식이라는 소재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소재와, 그걸 차근차근 정보적으로 담아낸 영상들과, 때론 정겹기까지 한 어느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들은 물론 잘 준비된 재료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그 준비된 재료에 맛좋은 표현으로 손맛을 내는 최불암이라는 '한국인의 밥상'만이 가진 비기(?)다. 최불암. '한국인의 밥상'에서 그는 정말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