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한도전', 오디션에 지친 음악을 쉬게 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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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오디션에 지친 음악을 쉬게 하다

D.H.Jung 2011. 6. 1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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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보여준 진정한 음악의 즐거움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가져온 부작용일까. 언제부턴가 음악은 마치 무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잘 부르면 합격이고 못 부르면 탈락이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과연 진정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 아무리 감성을 담아서 부른다고 해도 엄청난 성량으로 폭탄처럼 대중을 정신없게 만드는 노래에 묻혀버리는 무대. 그 위기감에 거의 한풀이하듯 끝없이 질러대는 목소리는 처음에는 감동이었으나 차츰 피로감으로 변해갔던 것도 사실이다.

'나 원래 이렇게 잘 부르는 사람이야.' 혹은 '이렇게 부르는데도 감동하지 않을 거야?' 이 살벌한 무대 위에서 음악은 자꾸 처절해진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음악이 주는 감동이겠지만, 어디 그것만이 전부일까. 음악은 언제든 편안하고 즐겁고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부르는 자와 함께 부르는 자가, 또 부르는 자와 듣는 자가, 또 듣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 특집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전해준 것은 오디션 열풍에 잠시 묻혀있던 '음악으로 나누는 교감'의 즐거움이다.

10cm의 노래, '사랑은 은하수다방에서'의 그 장소 은하수다방에서 벌어진 하하와의 즉석 콘서트는 음악이 주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유쾌하게 '아메리카노' 한 잔을 엎는 것으로 첫 만남을 가진 이들은 조금씩 음악으로 교감하며 어우러졌다. 제이슨 므라즈의 'I'm Yours'는 권정열의 미성에 하하의 '쎄-'가 섞이면서 절묘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긴장감이 감도는 무대가 아닌 카페에서 또 지나치다 악기 한 대 들고 언제든 끼어서 부르는 그 장면은 칼 같은 오디션 무대에 피곤해진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일본 콘서트 현장을 찾아간 박명수와 G드래곤의 만남은 음악을 통해 교감하는 신구세대의 풍경을 그려냈다. 세련된 G드래곤의 음악에 너무 따라잡기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트로트풍을 강권하기도 하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시종일관 웃음을 주었던 이유는 그 구세대의 박명수의 투정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고, 그걸 받아주는 신세대 G드래곤의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여유롭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싸이 콘서트에서 싸이와 함께 미친 에너지를 발산한 노홍철은 그 열정적인 무대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공감하게 되었다. '연예인'을 부르며 온 몸을 흠뻑 땀으로 적시며 노래하는 싸이가 마지막 곡을 부르고 무대에 내려와 복잡한 회한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가수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그러니 노홍철이 결국 싸이의 겨드랑이 땀(?)마저 공감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게다.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개그욕심을 드러내던 정재형은 음악작업에 있어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와 만난 정형돈은 묘한 부조화를 통해 음악의 또 다른 즐거움을 예고했다. 그것은 바로 극과 극의 느낌이 음악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 어색함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들이 함께 만들어낸 음악이 주는 감흥도 깊어질 수 있다는 반전의 기대감. 한편 늘 바보 캐릭터로만 보였던 정준하는 뮤지컬 무대의 음악을 통해 진지함을 보여주었고, 스윗 소로우는 그 감흥에 덧붙여 즉석 아카펠라로 교감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역시 반전이 주는 하모니의 공감은 더 컸다.

바다와 길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가슴 찡한 공감을 나누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눈물을 흘려주고 토닥여주는 모습은 그 자체로 음악이었다. 거기에 곡만 붙이면 그대로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통한 그들의 음악이 기대되는 건 그 깊은 교감이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한편 유재석과 이적은 기타 하나 들고 떠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이 바로 음악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부른다기보다는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이적 특유의 즉흥음악은 유재석의 무명시절 일이 없어 제일 고민했던 게 '내일은 뭐 하지'라는 모티브에서 시작됐다. 아프지만 추억어린 이야기와 만나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 이 노래는, 노래가 아무리 좋아도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음악으로 들려주었다.

사실 음정이나 박자가 좀 불안하고 고음이 잘 올라가지 않으며 또 목소리가 미성이 아니라는 게 진정 음악을 즐기는데 장애가 될 수는 없다. 음악은 듣기 좋고 소름끼치게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를 장난치듯 만들고 갖고 놀며 즐길 때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한도전' 서해안 가요제 특집은 '음악으로 나누는 교감'을 통해 이 진정한 음악의 즐거움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