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키앤크' 김병만의 땀과 눈물, 이것이 달인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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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앤크' 김병만의 땀과 눈물, 이것이 달인이다

D.H.Jung 2011. 6. 1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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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김병만의 '키앤크', 김연아를 울리다

'키스 앤 크라이'(사진출처:SBS)

고작 5분도 안되는 시간. 바로 그 짧은 시간 동안 빙판 위에서 보여줄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넘어지고 땀 흘리고 아파했을까. 싱글 토 점프, Y자 밸런스, 스루 더 레그, 스파이럴... '키스 앤 크라이'의 1차 경연 무대에서 이 많은 기술들을 무난하게 소화해낸 김병만은 멋진 퍼포먼스가 다 끝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발목 인대 부상으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파트너인 이수경씨는 그런 그가 안쓰러워 자꾸만 기대라고 했지만 그는 애써 참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고통스런 얼굴은 짙은 채플린 분장 속에 감춰졌다. 다만 끝없이 쏟아지는 땀이 그 힘겨움을 말해줄 뿐이었다. 김병만은 부상을 당했던 얘기를 꺼내고는 담담하게 "연습한 만큼 안돼서 굉장히 안타깝다"고만 말했다. 그리고 화제를 자신이 아닌 파트너인 이수경씨에게 돌렸다. "성격이 굉장히 좋으셔서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셔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키스 앤 크라이'의 심사위원인 김연아는 심사평을 하다가 문득 "감사하다"는 말을 꺼냈다. 김병만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에 감동한 것이다. 그리고 "제가 봐왔던 피겨 연기 중 정말 최고의 연기"였다고 극찬했다. 물론 프로 선수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김병만의 스케이팅은 그것들과 대체할 수 없는 진정성이 있었다.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늘 웃고 있는 삐에로, 찰리 채플린은 김병만의 본 모습이었고 그것은 바로 달인의 진면목이었다.

"'달인'이 어떤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리얼로 찍어 보여주면 어떻겠냐"는 필자의 질문에 '개그콘서트' 서수민 PD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걸 보여주면 다들 울고 말 것"이라고. 우리가 봐왔던 그 몇 분 남짓의 기예에 가까운 '달인'의 무대에는 이처럼 남모르는 김병만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그저 깔깔 웃어 넘겼지만 그는 그 짧은 웃음을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개그 무대가 감동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차원에서다.

무엇보다 김병만을 진정한 달인으로 만든 것은 그러나 그런 끝없는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보여준 '배우는 자세'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아니었다면 그 놀라운 기예는 재주의 차원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힘겨워하는 김병만을 위해 "여성분한테 기대라"는 박해미의 말에 "코치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여자가 항상 우선이다. 빙판 위에서는."이라는 말 속에는 그의 자세가 그대로 녹아있다. 또 심사위원 모두의 최고 점수를 받고서도 "저는 정말 다른 팀 분들한테 죄송합니다. 중간에 제가 실수했는데 저를 이렇게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말 속에는 같은 동료에 대한 배려심이 묻어난다.

벅찬 마음에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김병만의 모습에 김연아가 울고 파트너와 동료가 울고 관객들이 울고 특히 같은 '달인'팀으로 옆에서 그를 늘 바라봐왔던 류담이 펑펑 울었던 건 그 5분 남짓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그가 들이는 엄청난 노력을 그 순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1년간 얼음판 위에서만 살아오신 동상 김병만 선생'이라고 너스레를 떨지만, 그 11년의 공력(?)을 만들기 위해 흘렸을 땀과 눈물이 거기 보였기 때문이다.

김병만과 이수경 팀이 본래 보여주려 했던(실패해서 다시 보여주었던) 찰리 채플린 퍼포먼스의 엔딩장면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 김병만이 빙판 위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면 그의 등 위에 이수경이 앉는 이 장면은 마치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무릎 꿇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달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속으론 울면서 겉으론 웃는 많은 훌륭한 희극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