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키앤크'는 어떻게 스포츠 소재의 한계를 넘었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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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앤크'는 어떻게 스포츠 소재의 한계를 넘었나

D.H.Jung 2011. 7. 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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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앤크', 기술보다 과정으로 승부하다

'키스앤크라이'(사진출처:SBS)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는 여러 모로 불리함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김연아가 하나의 신화가 됨으로써 높여놓은 대중들의 눈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 하면 이제 트리플 점프를 떠올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빙상 위를 물 찬 제비처럼 미끄러지는 장면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것은 전적으로 김연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일 뿐, 이제 갓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지난한 기술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포츠라는 소재는 진짜 스포츠 중계만큼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포착해내는 방식으로서의 스포츠 중계가 정착되어 있는 것은 그 형식이 가진 힘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키스 앤 크라이'는 분명 스포츠 중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흥미진진함을 갖춘 프로그램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 힘을 만드는 것일까.

그 차별점은 바로 과정에 있다. 스포츠 중계는 그 단판 승부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 승부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점프를 보며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인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그 힘겨운 과정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스 앤 크라이'는 다르다. 이 프로그램에서 달인 김병만은 평발의 한계를 딛고 극한의 노력을 통해 거의 준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선보였다. 만일 그 과정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마 실망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의 런지나 점프 동작 하나하나를 우리는 감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박준금의 나이를 잊은 스케이팅,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손담비와 크리스탈의 팽팽한 대결, 몸치를 극복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서지석과 아이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이며 개그맨 뺨치는 예능감을 보여주는 유쾌한 이규혁, 타고난 끼와 재능을 가진 유노윤호, 엄마의 도전이 돋보이는 이아현 그리고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진지희. 사실 우리가 '키스 앤 크라이'의 빙상 경연에 도전하는 출연자들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은 이러한 각자가 가진 사연과 어우러진 피겨 도전 과정의 스토리다. 기술? 물론 이 프로그램에서도 중요한 과제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노력의 과정과 그로 인해 얼마만큼 변화되었는가가 더 관건이다.

즉 이 경쟁은 겉보기에는 상대평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절대평가에 가깝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어느 정도 단계를 넘어선 김병만 같은 도전자의 승부와, 몸치에 가까운 서지석의 승부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것은 이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이나 장미평가단들,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지희처럼 기술이 부족해 심사위원으로부터 최하점을 받은 팀도 장미평가단에 의해 7위가 될 수도 있는 게 '키스 앤 크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통해 실로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사실 그 누가 김병만이 3개월만에 이런 프로에 가까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노력하는 손담비의 놀랄만한 기술에 대한 도전과, 타고난 선을 가진 크리스탈의 재능을 우리는 이 프로그램이 있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바로 이런 지점들이 '키스 앤 크라이'가 스포츠 중계 그 이상이 되는 이유다. 그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