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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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미스 리플리'의 반전은 시청자 기만이다

D.H.Jung 2011. 7. 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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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리플리', 드라마가 거짓이 될 때

'미스리플리'(사진출처:MBC)

드라마는 현실일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거짓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허구의 장치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이 진실을 전할 때 드라마는 진정성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미스 리플리'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 불우한 삶을 살았다면 거짓말로 살아도 된다는 것? 제 아무리 거짓말을 했어도 사랑한다면 눈 감아 줄 수 있다는 것? 거짓말한 당사자보다 거짓말 하게 만든 부모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

그게 아닐 것이다. '미스 리플리'의 기획의도 속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그녀에게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을 권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세상의 정의를 과연 흔들림 없이 믿고 사는 걸까? 정직과 성실만이 세상의 성공과 출세를 보장한다고 의심 없이 외출 수 있는가? 이 드라마는 그 질문에 관한 답변이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공감 가는 문구다. 한 여자의 거짓말.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삶이 바뀌는 그 모습 자체가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 드라마의 애초 의도는 거짓말 하는 장미리(이다해)가 아니라 장미리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사회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후반부에 드러나는 장미리가 원래 그토록 그녀와 아들(배다른 자식) 유현(박유천)의 결혼을 반대하던 이화(최명길)가 버린 딸이라는 반전이다. 이렇게 되자 이야기의 초점은 장미리와 그녀를 거짓말 하게 하는 사회가 아니라, 그녀를 거짓말 하게 한 '출생의 비밀'로 옮겨간다.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사로 환치한 것이다. 이것은 반전이 아니라, 아예 본래 메시지를 파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 이런 황당한 반전이 생겨난 걸까. 그것은 애초의 인물 구도에서 좀 더 명확하게 캐릭터를 규정하지 못한데서 생긴 일이다. 기획의도가 살려면 장미리는 대중들이 공감할 만큼 좀 더 처절한 거짓말의 동기를 가졌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본을 통해서도 연기를 통해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또 장미리의 주변인물들, 예를 들면 장명훈(김승우)이나 송유현(박유천)이 그렇게 멋있게 폼을 잡아서는 안 된다. 물론 실제 상황이라도 왜 거짓말 하는 여자에 대한 순수한 연정이 없었겠냐마는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라 확고히 짜진 메시지를 드러내는 또 다른 세계다.

이 세 명의 중심인물의 구도가 메시지를 정확히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바깥에서 다른 잔재미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즉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그런데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친 어머니라는 식의 전형적인 출생의 비밀 코드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중간에 갑자기 캐릭터가 바뀐 히라야마(김정태) 역시 황당한 반전이다. 장미리를 사랑했다는 식으로 뒷부분에 바뀌었지만, 그렇다면 첫 장면에서 왜 그는 장미리를 강간까지 하려 했던 것일까. 그게 그가 사랑하는 방식인가.

드라마가 본래 의도를 상실하고 거짓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것이 단편이 아니라 몇 주에 걸쳐 계속 이어지는 장편이기 때문이다. 시청률이 떨어지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본래 의도는 사라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미스 리플리'처럼 본래 기대를 망가뜨리는 드라마는 비록 시청률은 조금 얻었다 하더라도 비난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낮은 시청률에도 꿋꿋이 본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드라마들도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그래서 호평 받고 해외에서 성공한 드라마도 많다). '미스 리플리'는 거짓말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거짓말이 되어버린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