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1박2일', 빈부의 우화 같았던 폭포특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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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빈부의 우화 같았던 폭포특집

D.H.Jung 2011. 8. 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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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폭포특집, 한 편의 우화 같았던 이유

'1박2일'(사진출처:KBS)

"5천원 더 갖고 가" 엄태웅은 대표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 이승기에게 5천원을 건네고는 식사라도 하라며 남긴 만 원마저 건네려 한다. "아니요. 만 원은 식사하세요.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죠." 극구 거부하는 이승기에게 이제 은지원은 간절한 자신들의 소원을 새삼 되새긴다. "우리 소원알지?" 그러자 이승기는 날 믿으라며 반드시 소원을 이루겠다고 말한다. 은지원은 거기에 대고 "돈 팍팍 쓰면서 아이스크림 같은 거 사먹으면서" 꼭 일등을 하라고 보챈다. 서로를 꼭 껴안고 떠나는 이승기의 바지주머니에 엄태웅은 슬그머니 만원이 든 꼬깃꼬깃한 봉투를 넣는다. 그리고 출국장을 떠난 이승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 거기에 만원 넣었다."

이 풍경은 왠지 낯설지 않다.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유학을 떠나고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 가면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고, 그것으로 가난을 극복하고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던 그 희망. 그러니 당장 여기서는 굶더라도 보내는 이에게 주머니를 톡톡 털어주는 것이 뭐가 어려운 일일까. '1박2일' 폭포 특집은 '대한민국 1등 폭포를 찾아라'라는 미션으로, 제주도의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다는 엉또폭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먼저 찾아가는 세 명의 소원을 들어주는 이 이야기는 그러나 갑자기 부자와 빈자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용돈을 받는 게임에서 돈을 많이 받은 김종민, 강호동, 이수근이 담합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담합을 바라보던 나영석 PD는 "여유 있게 들어가서 비행기타고 가셔서 여유 있게 찾아가서 여유 있게 1,2,3등 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줄 것이냐며 혀를 찼다. 그러자 강호동은 "이렇게 손 잡을 줄은 몰랐던 거지"라고 말했고, 이수근은 설명을 덧붙여 "예를 들어서 5만 원짜리랑 10만 원짜리랑 손을 잡아야 다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여행경비 독과점을 마치 자랑이나 되는 것처럼 뽐냈다. 그러자 강호동이 현실을 얘기했다. "리얼 상황이 제일 좋은 게 뭔지 아니? 매번 9회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이 나올 수는 없는 거야. 가끔씩 1회 때부터 15대6으로 이길 수 있는 거야. 이것이 리얼이지." 이수근의 말처럼 현실은 어쨌든 나머지 세 사람, 이승기, 은지원, 엄태웅이 모두 제주도에는 못 온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빈자와 부자의 운명이 이미 태생에서부터 정해진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으니 그것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포기하고 한 사람을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수는 실제로 일어난다. 은지원과 엄태웅이 자신의 돈을 톡톡 털어 이승기의 주머니에 넣어준 것. 이로써 이승기는 결국 이 레이스에서 1등을 차지했고 부자팀은 서로 2,3등을 차지하기 위해 배신과 담합을 이어갔다. 강호동과 김종민이 이수근을 버리고 2,3등을 차지했지만 이승기는 이 이야기의 반전을 소원에 담았다. 이승기의 소원으로 2,3등을 은지원, 엄태웅으로 바꾸겠다는 것.

폭포 특집 미션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연합으로 이어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즉 돈으로 뭉쳐진 부자들은 결국 그 이기심 때문에 붕괴하고, 가난하여 마음으로 뭉치게 된 이들은 서로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서로 단합하게 된다는 걸 우화처럼 들려준 것. 어디 현실에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까 싶지만, 그것을 '1박2일'은 게임을 통해 판타지적인 우화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치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램프 같은 상징물로 다가온 엉또폭포가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는 폭포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결국 비가 오지 않아 폭포의 자태를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결과가 뭐가 중요할까. 이미 과정 속에서 어떤 이들은 그 아름다운 폭포를 보았을 것이니까. 많은 우화들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