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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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의 '아버지', 우리들의 곡이 된 이유

D.H.Jung 2011. 8. 2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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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의 '아버지', 상처가 눈물을 넘어 노래가 될 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 스스로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처다.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떠났고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끔 편지왕래를 했었다지만 그것이 이 땅의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겪은 그 세월을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녀의 '아버지'라는 곡은 바로 그 꺼내기만 해도 아픔이 되는 그녀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첫무대에서 꺼내든 이 곡은 가수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면서, 동시에 아마도 어쩌면 그녀가 불렀던 그 어떤 곡보다 어려운 곡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한 그녀의 '고백'은 노래가 그 어떤 기교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거 인순이의 존재감을 갑자기 우리 가 느낄 수 있었던 '거위의 꿈'을 그대로 재연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해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쳐왔던 자신을 노래 속에 담아냈던 것처럼.

조관우의 말처럼 "인생을 알면서 그 아픔을 딱 담을 수 있는 현존의 음악하시는 분의 최고"라는 찬사는 그저 듣기 좋은 수사가 아니다. '아버지'라는 곡이 가진 그 담담함을 이처럼 절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인순이 만한 가수가 있을까. 곡에는 그녀의 '눈물' 속에 담겨진 아버지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라는 긍정이 담겨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진실. 인순이는 그것을 스스로의 삶을 담아 노래로 전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워했었다"고 고백하고, 또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 무대가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그녀의 곡을 통해 그간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던 존재, '아버지'를 각자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순이의 '아버지'는 이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녀가 노래 시작 전에 읊조렸던 그 말, '커다란 산'이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그 말은 아마도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이 의미도 이중적이다. '커다란 산'은 든든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아픔으로 가진 이들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함'을 뜻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인순이의 진술은 이제 그 고통을 넘어 트라우마마저 관조할 수 있는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아버지지만, 이제는 그 '쓸쓸했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다시 아파오게 하는 존재. 바로 누구나의 아버지일 것이다. 이제 꺼내는 것만으로도 상처인 '아버지'를 노래로 부르며 긍정하고 있는 인순이를 통해, 물론 그 감회의 크기나 정서는 다르겠지만 우리도 저마다의 아버지를 꺼내보게 된다.

그녀는 노래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노래는 이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또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을 못내 후회한다. 인순이는 자신은 "사랑했었다"고 과거형으로밖에 못했던 그 말을 '지금' 우리에게 꺼내놓는다. 이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하지 못한 그 말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지 않은 그 말이기도 할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카네기홀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가진 인순이는 그 두 번째 무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모셔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처는 아물면서 더 단단해졌고 그것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수임을 고집하는 '천상 가수'에 의해 고스란히 하나의 노래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상처가 눈물이 아닌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은 상처의 토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까지 다독이며 두드리는 소통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