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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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 김병만

D.H.Jung 2011. 11. 1.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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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과 김병만의 법칙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이것은 진짜 야생이다. 그저 하룻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 악어가 출몰하고 뱀이 지나다니는 그 곳에서 집도 없고 텐트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 보여주는 야생이다. 제 아무리 야생에 익숙한 서바이벌 전문가라고 해도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병만이 말한 것처럼 이건 동물원 우리 바깥에서 안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

실제로 이 악어섬에 들어온 첫 날, 이들은 그 날카로워진 심경을 드러냈다. 김병만과 리키 김은 의견 충돌이 생겼고, 광희는 너무 힘겨운 상황에 웃음을 잃었다. 류담은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허기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이 가능할까. 아무리 코미디가 몸에 밴 개그맨이라도 당장의 배고픔과 갈증, 불편한 잠자리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 환경 속에서 웃음을 만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적응 이틀째만에 이 야생의 악어섬에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진원지는 역시 김병만이다. 먹이를 찾아 섬을 돌아다니다 나무 위에 있는 새집을 발견하고 그 곳에 올라간 김병만은 갑자기 달인쇼를 한다.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새집만 한 5만7천여 군데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아 전망이 좋네. 이 새는 지금 돈이 좀 있는 새입니다. 펜트하우스예요. 이렇게 큰 집은 처음 봤습니다.... 지금까지 한 16년 동안 나무만 타온 늘보 김병만입니다. 참 허기져가지고 개그도 잘 안된다."

나뭇가지 속에서 나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를 갖고 리키 김에게 자기가 내는 소리라고 장난을 치고, 뜨거운 더위에 물가로 가서는 얕은 물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몸 개그로 일행들을 웃긴다. 육지로 갑자기 뛰어오른 김병만은 그 뜨거운 바닥 때문에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연출하며 물쇼, 헤딩쇼, 모래쇼를 완성한다. 이 정도면 달인쇼의 아프리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글의 법칙'의 첫 회가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보여줬다면, 2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그래도 가져갈 수 있는 예능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거기 달인 김병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기예들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있다. 나무를 원숭이처럼 타고 오르고, 새총으로 뱀을 잡고, 모기장으로 통발을 만들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네든 애벌레든 먹어치우는 그는 이제 생존의 달인이 되어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야생 속에서도 여전히 개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심각한 얼굴로 위협적인 환경 속에서 생존을 보여주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존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배가 고프고 녹초가 된 상황에서 어찌 누군가를 웃기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하지만 김병만에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것이 그가 지금껏 국내 개그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저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힘들게 도전하고 그걸 통해 보여준 것으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도 했다. 결국 웃어주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도전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힘겨워서 웃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웃지 못하기 때문에 힘겨운 지도 모른다. 김병만은 누군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그들이 웃어야 자신도 즐거울 수 있기 때문에 극한의 생존 상황에서도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글의 법칙'이 그저 적나라한 고통으로 가득한 리얼리티쇼로만 가지 않고, 그 안에 웃음이 있는 예능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정글의 법칙'은 그 안에 '김병만의 법칙'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제 아무리 정글이라도 웃어야 하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