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예능, 예능의 발견 '1박'의 나영석 PD
나영석 PD는 역설의 연출자다. 무려 5년 간이나 여행 버라이어티를 이끌어오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바로 이 점이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만일 제가 여행 마니아라면 프로그램도 마니아적인 게 됐을 겁니다. 보통 가정에서 여행을 그렇게 자주 가지는 않잖아요. 제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오버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죠."
이 '보통 사람들'의 시각은 다름 아닌 '1박2일'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다. 나영석 PD의 성향처럼 '1박2일'은 늘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은 나이에 걸맞는 혜안이 있기 마련인가 봐요. 촬영을 가서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 툭툭 던지는 얘기 속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강호동씨가 시골에 가면 어르신들 붙잡고 얘기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 분들에게는 정말 뭔가 건질 게 분명히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1박2일'의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 대한 존중은 루머나 오해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단 PD가 사과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부산 사직구장 논란이 그랬고, MC몽의 흡연 장면 논란이 그랬다. 물론 이건 초창기 일찌감치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즉 밀양 여행 편에서 시골집에 간 이수근이 빨래판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장면이 나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민폐 논란'이 생겼던 것. 하지만 이건 오해였다. 그 집은 본래 나PD의 외할머니집이었고, 빨래판은 오래돼서 본래부터 태우려고 내놓은 것이었다는 것. 그 후로 나PD는 대중들이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1박2일'이 어딘지 투박하고 서민적이며, 꾸며진 화려함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도 이러한 나영석 PD가 가진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나영석 PD는 애초에 '1박2일'이 '여행'이라는 어딘지 거창한(?) 소재를 겨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야외에 한번 나가보자.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나 한번 들여다보자던 것이었죠. 그런데 정말 의외의 재밌는 상황들이 벌어지더라구요. 라면 하나 가지고 누가 먹었냐 안먹었냐를 놓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었죠. 물론 그런 상황을 초기에 만든 건 전적으로 강호동씨의 공이 큽니다."
나영석 PD의 '내버려둬도 무언가 나온다'는 이 자신감은 '1박2일'만의 느긋함과 자연스러움을 만들었다. 무언가 인위적인 상황을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내버려두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발견'해내는 심지어 '다큐스러움'은 그래서 '1박2일'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다. 이 자연스러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출연자들의 캐릭터다. '1박2일'은 출연자들에게 억지로 캐릭터를 부여하진 않는다. 차라리 내버려두고 스스로 캐릭터를 발견하고 찾아낼 시간을 준다. 이수근이 그랬고, 엄태웅이 그랬으며, 후에 다시 복귀했던 김종민이 그랬다.
이 자연스러움과 기다림의 태도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 비견된다. 무언가 해줘야 하는 마음은 있지만 급하게 다그치면 본래 가야할 길을 가지 못하고 엄한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부모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 출연자들이 더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또 갈 길을 제대로 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출자로서 당장 역할을 못하는 출연자들을 보면 어찌 답답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한 집에서도 잘 나가는 자식이 있으면 묻어가는 자식도 있는 법이죠. 그러다 어느 날은 그게 뒤바뀌기도 하고요."
하지만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만 굴러갔다면 '1박2일'은 어딘지 밋밋한 느낌의 예능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영석 PD는 다큐처럼 진지한 모습 뒤에 어린 아이 같은 개구진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늘 야전에 머물면서 시커멓게 타버린 얼굴이 슬쩍 미소를 보일 때 드러나는 게 바로 그 장난기 가득함이다. 이것은 '1박2일'이라는 진국에 톡톡 쏘는 맛을 내는 양념, '복불복'을 그대로 빼닮았다. 복불복이라는 코드는 '1박2일'의 예능적인 부분들을 뾰족하게 담아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물론 '1박2일'이 복불복으로 한 게임들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반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가위바위보, 묵찌빠 같은 이미 누구나 익숙한 기본적인 게임들 아니면, 아예 족구나 탁구 같은 스포츠들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반복적으로 게임을 하면서도 어째서 '1박2일'의 복불복은 매번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을까. 이것은 게임은 단순했지만, 그 게임에 거는 것들이 다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텝들 전원 야외취침을 복불복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니 어찌 간단한 족구 게임이라도 몰입도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론 다큐 같고 때론 완전한 예능 같은 이 어찌 보면 이질적인 두 분야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엮어지는 과정은 나영석 PD의 진지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것은 '1박2일'이 나영석 PD를 닮은 것일 수도 있고(그 성향이 묻어난 것), 또 정반대로 5년 간이나 함께 해오면서 나영석 PD가 '1박2일'을 닮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 우리가 '1박2일'과 나영석 PD를 비슷한 어떤 존재로 보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제 나영석 PD의 '1박2일'은 그 긴 여행을 끝냈다. 이제 대신 최재형 PD의 '1박2일'이 그 새로운 여행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네 예능에서 한 획을 그은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면서 나영석 PD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영석 PD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1박2일'이라는 '발견의 예능'은 그래서 새로운 '예능의 발견'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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