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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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으면 놀라운 '런닝맨'의 진화

D.H.Jung 2012. 2. 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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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맨'의 게임 예능 한계 극복기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에서 '스파이 콘셉트'는 게임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 전까지 '런닝맨'은 어떤 미션을 두고 개인전 혹은 팀 대결을 벌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스파이 콘셉트'가 들어가면서 미션은 이중구조를 갖게 됐다. 겉으로 주어진 미션이 있지만, 그 안에 스파이가 들어가 있는 또 다른 미션이 숨겨져 있는 방식이다.

유재석이 스파이가 되어 다른 런닝맨들의 이름표에 물총을 쏘았던 미션은 그래서 '런닝맨' 게임이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물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런닝맨들은 미션을 주는 제작진은 물론이고 동료 런닝맨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두뇌싸움이 치열해졌고 그만큼 게임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다해가 게스트로 출연한 '런닝맨'은 이 스파이 콘셉트의 게임 방식을 한 번 더 뒤집었다. 통상 한 명 혹은 두 명에게 주던 스파이 카드를 이다해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었고,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이다해는 바로 그 점을 역이용해 '스파이 런닝맨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간다. 여기에는 이다해의 전작인 '미스 리플리'의 캐릭터가 활용되었다. 즉 목적을 위해 특유의 미모와 거짓말로 타인을 이용하는 캐릭터다.

이다해가 출연했던 '스파이 런닝맨' 게임을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는 꽤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어야 가능하다. 런닝맨의 게임 방식(즉 이름표를 뜯거나 어떤 지령에 따른 미션을 수행하는 식)은 기본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스파이 콘셉트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게스트의 정보나 이미지 콘셉트를 미리 꿰고 있다면 게임은 더 흥미진진해진다. 물론 '런닝맨' 특유의 공간에 대한 지식도 즐거움을 부가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사전 정보들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다해가 출연한 '스파이 런닝맨'을 봤다면 어땠을까. 그다지 큰 감흥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은 '런닝맨'이라는 게임 예능이 지금껏 달려온 길이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대단한 것인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우리는 어느새 초기 '런닝맨'의 그 단순했던 게임 형식에서 한참 멀리 달려온 지금의 진화된 '런닝맨'을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주 조금씩 '런닝맨'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세계가 가야할 길들의 법칙들을 일러주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유람선에서 벌어진 셜록 홈즈 콘셉트의 '런닝맨'은 예능적으로 보면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런닝맨들이 한 명씩 아웃되는 의문의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그러다 결국 숨겨진 루팡 캐릭터가 등장하는 반전은 게임 형식에 미스테리와 스릴러 액션까지 덧붙인 놀라운 결과물로 탄생했다. 즉 '런닝맨'은 이제 다양한 외부 콘텐츠들(혹은 캐릭터)이 갖고 있는 스토리들을 게임 형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민수를 출연시켜 '런닝맨 헌트'를 하고, 이다해를 출연시켜 미스 리플리 캐릭터를 부여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즈음에서 '런닝맨' 이전의 예능에서 우리가 봐왔던 게임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거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게임들이었다. 특정 공간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쿵쿵따를 하거나 닭싸움을 하거나 레이싱을 하는 식의 그런 게임들. 이것은 지금도 대부분의 리얼 예능들이 하고 있는 게임들이다. 하지만 '런닝맨'이 보여주고 있는 게임들은 이보다는 몇 단계 앞에 서 있는 것들이다.

게임이라는 것이 너무 어려워도 시청자가 적응할 수 없고 또 너무 쉬워도 시시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균형과 적절한 진화 속도를 유지해온 '런닝맨'의 끈기와 근성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효진 PD는 그래서 여전히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그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초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복잡해진 현재의 '런닝맨'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런 제작진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런닝맨'의 성공적인 진화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