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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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가 <하이킥>보다 나은 점

D.H.Jung 2012. 5. 1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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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굳이 심각해질 필요 있을까

 

<스탠바이>는 확실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만큼 화제가 되고 있지는 않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5% 정도에 머물러 있다. 역시 시트콤에 있어서는 김병욱 PD가 갖는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하이킥> 시리즈가 시트콤들 중에서 가장 도드라진 지점을 차지하는 이유는 그것이 좀 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이킥>은 그 자체가 낮은 자들이 높은 자들에게 날리는 것이니까.

 

 

'스탠바이'(사진출처:MBC)

그래서 <하이킥> 시리즈를 볼 때 우리는 조금 진지해진다. 캐릭터가 표상하는 현실 반영적인 지점을 찾아내려 하고, 그들 사이의 권력 관계와 그 변화를 예민하게 바라본다. 또 이야기 소재에 있어서도 그 스토리가 갖는 풍자적 의미 같은 것을 찾아내려 한다. 당연히 이런 지점들은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에 화제성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때로는 과도한 의미화가 시트콤이 갖는 발랄함을 자칫 무겁게 만들 수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후반부로 가면서 동력을 잃었던 것은 그 무거움 때문이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이 갖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다. 코미디와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 현실의 무게는 시트콤을 블랙코미디와 심지어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한다(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할 때 시트콤의 본질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탠바이>가 가진 <하이킥>보다 나은 지점들이 보인다. <스탠바이>는 전형적인 시트콤에 충실한 작품이다. 긴 서사보다는 말 그대로의 상황(시추에이션)에 더 집중하고, 아이디어만큼 캐릭터에 신경을 쓰는 시트콤. 확실히 <스탠바이>의 최대 장점은 견고한 캐릭터들에 있다.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특유의 천사표 마음을 갖고 있는 류진행(류진)은 과도한 결벽증이라는 캐릭터로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소한 흐트러짐조차 가만 두고 보지 못하는 그 성격은 특별한 사건이 개입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드러나면서 서서히 웃음의 강도를 높여간다. 류기우(이기우)와 고교시절 같은 학교 출신이었지만 그것을 숨기고 있는 하석진(하석진)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캐릭터이고, 류진행을 짝사랑하는 털털한 성격의 김수현(김수현)은 겨털 에피소드처럼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귀여운 면모를 잃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갑자기 가족을 잃고 류진행에 의해 같이 살게된 시완(임시완)은 뭐든 잘 하는 캐릭터로, 뭐든 잘하는 게 없는 김경표(고경표)와 비교되는 캐릭터이고, 진행의 아버지인 류정우(최정우)는 특유의 가부장적인 아버지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웃음을 준다. 이밖에도 방송사의 간판 아나운서인 박준금(박준금)이나 노총각 작가인 김연우(김연우), 또 류정우가 운영하는 스파게티 가게의 종업원인 쌈디(사이먼디), 그리고 정육점하는 아버지를 둔 덕(?)에 고기로 남자친구를 유혹하는 여고생 김예원(김예원)까지 소소한 캐릭터들조차 반짝반짝 빛나는 면모가 있다.

 

아무래도 캐릭터에 집중하고 있고, 그 반복적인 행동과 말투를 과장되게 보여주기 때문에 <스탠바이>는 캐릭터들의 유행어가 유독 많은 편이다. 박준금은 입만 열면 "○○가 장난이야?"를 반복하고, 김연우는 "저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하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뭐든 다 튀어나는 그 요술 가방(?)에서 기상천외한 것들을 꺼내주는 것으로 캐릭터가 구축되어 있다. 하석진은 직장에서의 일로 화가 나면 차에 앉아서 "나랏말쌈이 뒹국에 달아..."를 연발하는 습관이 있고, 류진행은 특별히 반복하는 대사는 없지만 늘 억울한 얼굴로 굴욕을 당하는 것으로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늘 불안하게 여겨졌던 것은 전작이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과연 누가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높아졌었다(물론 이건 기우에 불과했지만).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시트콤의 발랄함을 유지함으로써 심적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스탠바이>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스탠바이 된 캐릭터들은 차츰 시트콤이 진행되면서 점점 힘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스탠바이>는 물론 그 <하이킥>시리즈가 가졌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즉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화제성이 조금 떨어지는 게 있고 시청률도 낮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스탠바이>는 그 부담 없는 시트콤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탠바이>는 이제 이미 충분히 날린 잔 펀치들만이 아니라,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한 방이 있다면 이 준비된 시트콤은 어쩌면 좀 더 대중들의 편안한 저녁의 부담 없는 웃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