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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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시>, 떨다가 울다가 분노할거야

D.H.Jung 2012. 7. 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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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재난영화, <연가시>의 경쟁력

 

영화 <괴물>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은 괴물보다 더 끔찍한 공권력의 문제였다. 어찌 보면 진짜 괴물은 재난에 대처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자리보전이나 이익에만 급급한 공권력이었다. 그래서 재난에 직면한 국민들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가족 같은 혈연 공동체에 의지하게 된다. 괴물에게 잡혀간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건 그 가족들뿐이다.

 

 

'연가시'(사진출처:(주)오죤필름)

재난영화가 국가기관이 아니라 가족에 집중하는 건 <괴물>만이 아니다. <해운대> 역시 쓰나미가 밀려오는 그 시간들 속에서 오로지 가족을 조명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결국 이 재난영화에서는 쓰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가족애가 더 중요하다. 최근 우리네 영화에서 시도되고 있는 이른바 한국형 재난영화의 특징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이 ‘가족’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새로 개봉한 <연가시>도 마찬가지다. 한때 곱등이와 연가시 이야기로 공포를 자아내게 했던 바로 그 기생충이 소재다. 본래는 동물의 몸에 기생하지만, 인간의 몸에 기생하게 된 변종 연가시가 전국으로 퍼져나감으로써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재난 상황을 다루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재난보다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공권력의 문제가 등장한다. <괴물>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연가시보다 재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공권력에 의해 죽어나간다.

 

그래서 <연가시>를 비롯한 이른바 한국형 재난영화를 보다보면 그 안에 들어있는 몇 가지 장르의 결합을 느낄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공포다. 어디선가 나타난 괴생물체와 그로 인해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평온한 일상을 공포로 일그러뜨린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번째 발견되는 건 가족극이다. 그 공포 상황 속에 놓여진 가족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은 보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든다. <연가시>는 그 이야기 속에 힘겨운 가장의 스토리를 녹여서 이 부분이 더 극대화된다.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애정이 묻어나는 김명민의 목소리와 평범하지만 그런 가장을 끝까지 믿어주고 버텨내는 문정희의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 닿는다.

 

하지만 이 공포의 살 떨림과 가족극의 눈물을 넘어서고 나면 세 번째로 발견되는 것이 사회극이다. 도대체 국민들을 보살펴줘야 할 국가가 하는 짓이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서 가족들끼리 서로 살기 위해 재난 앞에 맞서는 모습은 그 자체로 공분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왜 저들이 저렇게 사투를 벌어야 하는가. 이것이 한국형 재난영화가 주는 감정선이다. 우리는 떨다가 울다가 분노한다.

 

알다시피 우리네 사회는 재난과 사고에 둔감하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지하철 방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엄청난 무고한 인명이 죽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제대로 된 예방책이나 세워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년 물 폭탄을 맞은 서초동에 마치 둑이 터지듯 쏟아져내려온 산사태에 의해 벌어진 재난은 한 해가 지나 다시 장마철을 맞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복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러니 우리네 재난영화들이 다루는 것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괴물 그 자체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전언.

 

<연가시>가 <괴물>이나 <해운대>의 재난과 달라진 지점은 그 안에 경제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일 게다. 이 주식투자로 한 방에 삶이 꺾어져 버린 가장 재혁(김명민)은 영화 내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닌다. 온 몸이 흙투성이 땀투성이에 새까만 재혁의 손바닥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우리를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가장의 끝없는 동분서주가 우리네 서민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이 경제 불황의 그늘을 표징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떨다가 울다가 분노하게 만드는 우리네 재난영화의 특징은 서구의 재난영화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보다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각적인 충격이 아니라 감정적인 충격이다. 아마도 한국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이 한국형 재난영화의 특징은 그래서 독특한 지점을 획득한다.

 

바로 이점은 <스파이더맨>이나 <다크나이트> 같은 해외의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연가시>가 가진 흥행 가능성을 점치게 만든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 한국형 재난영화가 어쩌면 그 어떤 블록버스터들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