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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수지와 은지가 보여준 연기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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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와 은지, 연기돌로 각광받는 이유

 

<건축학 개론>에 수지가 있었다면, <응답하라 1997>에는 은지가 있었다. 요즘 연예가에는 ‘상반기에 수지, 하반기에 은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두 아이돌의 연기 성공담에 대한 상찬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그간 아이돌의 연기 진출에 대해 대중들은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발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준비되지 않은 아이돌들은 때론 작품 자체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곤 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97'과 '건축학개론'(사진출처:tvN, 영화 건축학개론)

게다가 준비된 연기지망생들에게는 단역조차 얻기 힘든 상황에 인지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연으로 덜컥 발탁되는 아이돌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반감을 훌쩍 넘어서서 수지와 은지는 대중들에게 아이돌로서가 아니라 연기자로서 인정받았고 심지어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들의 무엇이 이런 상반된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었을까.

 

사실 수지와 은지는 연기력의 차원에서 보면 여전히 풋내기임이 분명하다. 연기력이란 결국 삶에 대한 경험은 물론이고 연기에 대한 그만한 경험치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더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할 수 있는 여지와 능력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수지와 은지는 확실히 불리한 입장이다. 하지만 이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꾸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이들이 말 그대로 순수하기 때문에 연기자로서의 자의식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연기력을 얘기할 때 그것을 하나의 ‘표현력’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장 좋은 연기란 ‘연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은 연기에 있어서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마이클 케인은 <명배우의 연기수업>이라는 책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영화 속의 인물은 사람이지 배우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한 사람을 연기해야 합니다.” 결국 연기는 연기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배역 자체를 자신을 통해 그대로 드러내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지와 은지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연기한 것이 아니다. <건축학개론>의 서연은 수지 그녀 자신이었고, <응답하라 1997>의 시원은 은지였던 것. 실제로 <응답하라 1997>의 신원호 PD는 은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연기자로서는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죠. 그렇지만 그 모든 걸 커버하는 센스가 있어요. 기존 연기자들의 정형화 된 연기에서는 이런 느낌이 안 나오는데, 자유분방하고 리얼한 느낌으로 연기 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빤한 대사 톤이 아니더라고요.”

 

수지와 은지의 성공사례는 연기에 입문하려는 많은 연기돌들에게 하나의 교훈을 제공한다. 그것은 연기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작품과 그것을 만드는 제작진이라는 것이다. 캐릭터가 얼마나 자신과 부합하는가가 중요하고, 제작진이 연기자로부터 그 캐릭터의 매력을 얼마나 잘 뽑아내는가 역시 중요하다. 이 두 부분이 맞아떨어질 때 연기돌로서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연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연기력 그 자체가 아니라 연기를 대하는 자세라는 걸 말해준다. 얼마나 진지하게 작품에 임하는가 하는 점은 연기의 기술적인 부분보다 훨씬 중요하다. 물론 수지와 은지가 진정한 연기자로서의 길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연기의 기술 부분을 조금씩 체득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술 역시 공부가 아닌 진지한 자세로 임했던 작품의 경험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연기돌들에게 하나의 전범을 보여준 수지와 은지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기력의 실체도 보여준 셈이다. 연기력,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