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네모난 세상

'광해'와 싸이, 광대라고 깔보지마

728x90

광대는 어떻게 대중들을 대변했나

 

이병헌 주연의 영화 <광해>는 자꾸만 ‘광대’로 읽힌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다름 아닌 기방에서 왕 흉내 내며 웃음을 주는 대가로 살아가는 광대다. 그 광대가 광해를 대신한다. 처음엔 연기였는데 하다 보니 점점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나가기 시작한다. 광대가 광해가 되어 광해보다 더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게 되는 이야기. 1천만 관객 돌파에 스크린 독점과 지나친 마케팅이 일조한 것이 사실이지만 <광해>의 흥행에는 바로 이 ‘광대’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강남스타일'과 '광해'(사진출처:YG엔테테인먼트, 영화 광해)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에 해당할 것이다. 대중들에게 값싼 대중문화를 통해 심지어 희망까지 주는 존재. 청소년들 세 명 중 한 명이 희망하는 직업. 물론 그만큼 치러야할 대가도 만만치 않지만 대중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그런 사람들. 영화 <광해> 속 하선(이병헌)은 분명 작금의 연예인을 빼닮았다.

 

요즘 연예인들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고 그런 발언이 대중들의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니 영화 속 하선이 던지는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명분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라는 대사는 SNS 시대에 때론 소셜테이너들이 던지기도 하는 속 시원한 한 줄 촌철살인 그대로다. <광해>는 여러모로 광대로 읽힌다.

 

또 한 명의 광대가 있다. 이 시대를 온통 말춤으로 들썩거리게 만든. 바로 싸이다. 광대나 딴따라라는 표현은 어딘지 비하적인 뉘앙스가 있어 많은 연예인들이 피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싸이는 아예 자신이 광대임을 드러냈다. “내 직업은 광대, 떴다고 모범적으로 살지 않겠다.” 싸이의 이 발언은 아예 광대의 본분과 철학을 담고 있다.

 

월드스타니 한류스타, 혹은 국민가수(?) 같은 호칭을 거부하고 국제가수라는 애매한 명칭을 스스로 부여한 것에도 광대의 철학이 묻어난다. 국제가수라는 명칭에는 국가나 민족이라는 뉘앙스가 없다. 그저 해외에도 활동하는 가수라는 의미만 있을 뿐. 광대는 국가나 민족의 부름에 구획되어 모범적으로 억지로 살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저 하선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웃음거리로 만들며 살아가듯이. 저 하던 대로 그대로.

 

사실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빵 터지기 전까지 국내에서 싸이에 대한 관심은 그냥 그랬다. 국가가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라잇나우’ 같은 곡에 19금 딱지를 붙이는 것이 국가가 가진 관심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비롯되어 전 세계로 싸이에 대한 관심이 번져나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시청 앞 광장이 월드컵을 재연하고, ‘라잇나우’는 19금 딱지를 떼었으며 심지어 국가는 싸이에게 훈장을 부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에 그만큼 우리나라를 알렸으니 훈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광대들을 위해 해주는 것이 고작 결과를 만들어낸 자들을 공치사 하는 일 밖에 없는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이것은 싸이의 공을 치하하는 것인가 아니면 싸이에게 훈장을 줌으로써 정부도 한 일이 있다는 식의 또 다른 숟가락 얹기인가.

 

사실 정치인들보다 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이 시대의 광대,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지금껏 연예인들은 정치적인 상황에 이용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다. 정치가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딴따라 취급하며 저 발톱의 때처럼 바라보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대중문화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올해 대선에서 3강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가 모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대중문화라는 말 등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저마다 말 춤을 추며 광대 싸이를 코스프레 하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시대의 새로운 정치 스타일이다.

 

<광해>가 광대로 읽히고, 싸이가 스스로를 광대로 내세우게 된 건 대중문화가 이제 우리네 정치적 입장까지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니 제발 대중문화나 광대를 우습게 보지 말라. 선거 때 반짝 광대 흉내 내고는 막상 정치권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저 <광해>의 신하들처럼 저들 이익에만 휘둘리면서, 대중문화의 토대와 저변을 마련해주기 보다는 뜬 대중문화에 서둘러 숟가락이나 얹는 그런 짓은 하지 말라. 저 왕을 연기한 광대가 대중들의 입을 빌려 한 그 준엄한 꾸짖음을 잊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