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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싸이, 국민보다는 팬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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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국민가수가 될 필요 있을까

 

“공항에 들어왔을 때, 이건 말도 안된다. 메달 딴 것도 아닌데. 나는 온라인을 믿어본 적 없다. 현장반응이 내겐 더 크게 와 닿는다. 빌보드보다 더한 감격은 여러분이다. 감사드린다.” 싸이가 한 이 진술 속에는 꽤 많은 그의 소회가 들어있다. 그것은 메달 딴 것 마냥 국민적인 성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감격과 동시에 느껴지는 부담감이다. 그는 단 몇 달 만에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그를 국민가수가 되게 했다.

 

'강남스타일'(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정상에 다가가면서도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해외 거주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세워주고 있다는 점이 국민적인 성원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빌보드 차트 2위라는 놀라운 소식은 전 국민적인 응원 분위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곧 1위를 탈환할 것이라는 소식, 그것도 마룬 파이브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팝 본고장의 스타들과 1위를 겨루고 있다는 것. 이런 사실들은 평소 팝을 잘 모르던 대중들까지 그를 국민가수로 세우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 귀국행을 결정했다. 국내 대학 축제 스케줄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미국에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유명 프로그램 출연이 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스케줄을 조정하려 했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귀국한 그는 스케줄을 소화해내면서 불평보다는 국내 팬과 활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시청 광장에서의 시민들을 위한 무료 콘서트도 펼쳤고, 춘천, 부산, 대구 등지에서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진정 국민가수라 불리는 이다운 선택을 한 것이지만 월드스타를 기대하는 한편에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사실 국민가수든 월드스타든 국내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하다. 마치 국가대표나 된 듯 국가와 국민을 호명하며 그를 세워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구시대적인 시각은 자칫 한 가수의 음악 활동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그저 자신의 직업에 걸맞게 노래를 한 것뿐이다. 그는 심지어 미국에서 뜨기 전에는 그렇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국민가수로 인정받은 후 월드스타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이 그를 월드스타로 만들었고(이것은 국가대표식이 아니라 철저히 상업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여기에 힘입어 뒤늦게 그를 국민가수로 추대했다.

 

물론 이것은 싸이로서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건 그에겐 의외의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하면 거기에 걸맞는 책임과 의무도 따르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세계적인 행보에 비해 사소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대학축제라도 일정조정을 하는 것이 구설수를 만들 수도 있고, 국민적 행사에 나와 달라는 요구 역시 거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 독도 홍보로 ‘강남스타일’을 활용하자는 안이 나왔을 때 그것이 오히려 싸이에게 숟가락 얹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었지 않은가.

 

우리는 유난히 순위에 민감하다. 세계 몇 위라는 발표는 그 자체로 그 대상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만든다. 그것이 국민적인 일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던 7,80년대 개발시대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월드스타는 국민이라는 수식어의 또 다른 버전이다. 해외에서 어떤 수확을 해왔을 때, 우리는 부끄럽게도 국내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에 심지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문화에 순위를 붙이거나 국민이라는 수식어로 치장하고 상찬하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제2의 싸이가 나올 수 있게 자유로운 문화적 풍토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싸이가 국민가수나 월드스타 같은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한 가수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그 직분에 맞는 가장 즐겁고도 효과적인 행보를 보이기를 원한다.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그를 거기에 걸맞는 틀에 규정하기보다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 누구도 하지 않은 뾰족한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바로 그 지점에 싸이 같은 세계적인 성공도 가능할 것이니. 그리고 대중들도 그런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싸이를 국민보다는 팬으로서 응원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