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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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이 드라마 과연 정체가 뭘까

D.H.Jung 2012. 10. 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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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인간의 예의를 아는 통속극

 

<내 딸 서영이>는 과연 막장드라마일까. 이서영(이보영)이 아버지인 삼재(천호진)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사실은 꽤 큰 파장을 만들었다. 제 아무리 무능력한 아버지라고 해도, 또 재벌가 아들과의 결혼을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뭐 하시냐”고 묻는 물음에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한 게 점점 실제로 굳어져버렸다고 해도 그 아버지를 부정한 사실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내딸 서영이'(사진출처:KBS)

왜 아닐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언젠가부터 두 종류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하나는 피도 눈물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밟고 성공한 권위주의적인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무능력하게 끝없이 뒷방으로 밀려나 이제는 드라마에서조차 별 대사도 없고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다. <내 딸 서영이>에 등장하는 삼재는 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물론 삼재가 서영에게 준 고통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침묵하는 아버지를 이제는 아예 부정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 딸 서영이>가 초반에 충격파로 던진 아버지에 대한 부정은 이 드라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금의 아버지들이 서 있는 바로 그 위치를 아프지만 콕 집어 얘기한 것처럼 보인다. 한 때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 권위를 부여받아 뭐든 그 중심으로 가족사를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달라진 시대에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그런 존재가 되었다.

 

한 때 큰 소리쳤던 아버지는 이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식들의 짐이 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현실을 인식한다. 가족은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가치지만, 때론 자식에게 가족이란 엄청난 족쇄로 다가온다. 가족이 해체되면서 생겨나는 이 두 가치의 갈등을 <내 딸 서영이>는 서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서영은 과거(아버지)를 부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여전히 그 과거는 자신의 존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서영의 직업이 판사라는 점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패륜 사건을 다루면서 그 패륜을 저지른 죄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과는 그녀의 생각처럼 정상참작이 되지 못하지만 그녀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스스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변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대한 죄의식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내 딸 서영이>는 마치 과거와 현재의 드라마가 혼재해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즉 아버지 삼재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파의 한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매 주말마다 딸과 사위의 모습을 멀리서 훔쳐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그렇고, 어느 날 사위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것을 우연히 보게 된 아버지가 차로 뛰어들어 사위를 구하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이서영의 시선을 통해 보면 아버지(가족)를 부정하고 오롯이 자기의 삶을 살려는 현재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시선은 이서영보다는 아직까지 아버지 삼재의 시선에 더 머물러 있다. 그만큼 제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버지라는 천륜은 어쩔 수 없다는 대중정서가 반영된 셈이다.

 

물론 지극히 통속극적인 소재와 그 전개, 그리고 초반부터 강력하게 아버지를 부정하는 이야기가 들어감으로 해서 막장이라는 논란이 생기고 있지만, <내 딸 서영이>를 그렇게 단순히 자극을 끄집어내 시청률만 올리려는 드라마로 보기는 어렵다. 결국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그렇게 아버지를 부정함으로써 겪게 되는 서영이의 갈등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보수적인 선택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게다.

 

<내 딸 서영이>는 그나마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아는 통속극이다. 여타의 주말 드라마들이 지독한 악역들을 세워놓고 거기에 대한 별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반면, <내 딸 서영이>의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는 그나마 그럴 법한 근거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부정한 서영이도 이해되고, 그 서영이가 여전히 행복하기만을 바라며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아버지도 이해되며, 또 그런 서영이에게 단호하게 아버지 앞에 나타나 그 그림자를 지우지 말라고 말하는 동생 상우(박해진)도 이해된다. 서영이도 아버지도 어떤 잘못을 했지만 그 이유와 결과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드라마는 꽤 자세히 설명해주려 노력하고 있다.

 

<내 딸 서영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충분히 달리 읽힐 수 있는 드라마다. 과거적인 가치로서 아버지의 입장만을 본다면 패륜 코드를 활용한 막장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달라진 가치 속에서 서영이가 아버지에 대해 갖는 갈등과 고통을 바라본다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착한 시선을 거기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딸 서영이>는 이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서 그 가치의 경계와 부딪침을 보여주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