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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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

D.H.Jung 2012. 11. 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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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이>, 핏줄사회가 만든 개인의 고통

 

“우리 결혼하고 3년 동안 넌 한 번도 나한테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거나 짜증조차 한번 낸 적이 없어. 항상 웃었지.” <내 딸 서영이>의 서영이(이보영)는 왜 그랬던 걸까. 그 이유는 이 너무나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 강우재(이상윤)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가끔 뭐랄까, 행복강박증 있는 사람처럼 그래보였거든. 꼭 내 사랑에 보답하려는 사람처럼, 웃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있는 사람처럼 애써서 웃는 느낌.”

 

'내 딸 서영이'(사진출처:KBS)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걸까. 아버지를 부정하고 얻은 신분상승의 대가가 혹독했다는 것은 그녀의 얼굴에서부터 드러난다. 혼자 있으면 늘 무표정하고, 어딘지 그늘이 느껴지는 그 얼굴이 남편 앞에만 서면 늘 웃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진짜 ‘행복해서 웃은 것’일 테지만 어디 그것뿐일까. 거기에는 아버지를 부정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그 사실을 속이고 있는 남편에 대한 부채감, 그리고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얻은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었을 게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부모를 부정하는 패륜이지만, 그 이면에 놓여진 것은 핏줄과 가족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이 시대의 주홍글씨다. 태생이 모든 걸 결정하는 사회에서 핏줄과 가족이란 늘 따뜻한 보금자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 개인의 행복을 발목 잡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패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태생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견고한 시스템이 한 개인에게 지운 절망적인 현실이 있다.

 

서영이는 엄밀히 말해 단순히 신분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가 아니다. 그녀는 자기 스스로 노력해 판사가 되었다. 이미 신분상승을 자력으로 해결했던 것. 하지만 결혼에 있어서 그녀 앞에 닥친 현실은 또다시 그 놈의 핏줄이었다. 결국 <내 딸 서영이>가 그려내고 있는 현실은 자력으로 제 아무리 신분상승을 꿈꾼다 해도 ‘저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결정되고 마는 그 막막한 현실이다. 그래서 그 태생을 지워버리려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서영이가 그 힘겨운 가족이라는 틀에서 어떻게 버텨왔는가 하는 점 역시 남편 강우재의 목소리를 통해 알 수 있다. “3년 전에 이 자리에 데려왔을 때 결국 피곤을 못 이겨 잠들면서도 이서영은 내 어깨에 작은 머리통마저 못 기대는 거야. 이 여자는 자면서도 긴장을 못 푸는구나. 자면서도 혼자 버티는 구나 참 외롭겠다...” 그래서 그녀가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서영이는 늘 고통스러워했고 그것을 누구에게 호소하거나 변명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그런 그녀를 패륜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은 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변호사를 선택하는 모습에도 드러난다. 패륜사건을 담당하면서 그렇게 패륜을 저지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자는 서영이는 거기에 아마도 자신을 투영했을 게다. 그리고 누군가의 죄를 판정하는 판사라는 직업보다는 누군가의 죄를 변호해주는 변호사라는 직업에서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일말의 희망을 찾았을 것이다.

 

흔히들 막장드라마라는 클리쉐 때문에 사실 꽤 많은 진지한 질문들이 묻히기도 한다. 그 많은 출생의 비밀이나 기억 상실 혹은 불치병의 이야기들은 사실은 어찌 보면 인간 운명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소재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을 자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될 뿐이다. 서영이가 저지른 일들을 단순히 패륜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저 수많은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또 하나의 우리가 처한 현실의 질문을 덮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보인다. <내 딸 서영이>가 다루는 건 패륜이 아니라, 어떻게 해도 태생의 문제로 회귀되는 이 핏줄 사회가 한 개인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가의 이야기다.

 

서영이는 남편 강우재의 막내 동생인 강성재(이정신)의 연기 연습을 도와주다가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자 연기를 빗대 남편을 질투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렇게 연기 속에서 남편이 질투하는 모습에 웃던 서영이는 갑자기 눈물을 쏟아낸다. “너무 웃겨서... 너무 웃기니까.”라고 변명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꽤 많은 서영이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거기에는 마치 행복을 연기하듯 살아가게 된 자신의 모습과 그래서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눈물이 나는 자신의 상황이 섞여 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