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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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시대 흐름 무시하는 시청률 추산 문제없나

D.H.Jung 2012. 11. 2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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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청률 추산을 왜 하나

 

불과 2,3년 전과 비교해도 작금의 시청률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런 변화는 특히 드라마에서 두드러진다. 과거 같으면 기본이 20%에서 시작해 잘된 작품은 4,50%를 넘기기 일쑤였던 사극의 시청률이 대표적이다. <마의> 같은 이병훈 사단의 웰메이드 사극도 겨우 17%의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종영한 <신의>도 10%대 시청률에 머물렀고 <대풍수> 역시 한 자릿수 시청률이다. 물론 이 작품들은 완성도에 그만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낮은 시청률의 원인이 온전히 작품의 문제만이었을까.

 

'추적자'(사진출처:SBS)

흔히들 사극이 죽었다는 얘기들을 하지만 사실상 죽은 건 드라마 전체의 시청률이다.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를 빼놓고 20%를 넘기는 드라마가 귀하게 되었다. <착한남자>처럼 극성 강하고 완성도도 높은 드라마도 18% 시청률로 종영하는 상황이다. 사극이 죽었다고까지 표현된 데는 과거 높은 시청률을 올렸던 잔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낙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란 얘기다.

 

이런 사정은 예능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만 해도 20%를 넘어 30%에 육박하는 예능 프로그램들(<1박2일>이 그랬고 <무한도전>도 그랬다)이 있었지만 지금은 주말 예능에서조차 20%를 넘기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개그콘서트>가 그나마 20%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니 주중 예능 시청률은 더 상황이 안 좋다. 토크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월요일 밤 예능들은 언젠가부터 10% 시청률 기록도 버거운 상태가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시청률 대폭락이 일어난 걸까.

 

시청률이 이렇게 뚝 떨어진 것은 콘텐츠가 질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청률 산정 방식이 점점 현실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시청 패턴이 TV 중심에서 인터넷, IPTV, 모바일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률 산정 방식은 이런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예로 들면 현재 시청률 산정은 매일 전국 13개 지역, 3천여 가구를 대상으로 시청률을 산출해낸다고 한다. 각 가구에 설치된 피플미터기(시청률 산출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치가 집계되는데 이 해당 시간 콘텐츠 자료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시청률이 산출되는 것. 물론 과거에는 이런 산정방식이 어느 정도 유효했을지도 모른다. 그 때는 TV 방송을 본다는 것이 브라운관 앞에 앉아있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였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로 방송을 보는 시청층들도 상당히 많아졌고, 시간에 맞춰보기보다는 IPTV를 통해 자유롭게 자기가 보고 싶은 시간에 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또 최근에는 모바일이 확산되면서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이렇게 방송을 보는 방법이 다양화되었는데 여전히 오로지 TV에만 맞춰져 있는 시청률 산정은 달라진 시청자의 기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편향적인 시청률은 광고의 잣대가 되기가 어렵다. 실제로 시청률과 광고가 비례적으로 올라가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즉 시청률이 제아무리 40%를 넘긴다고 해서 광고가 더 많이 붙지 않는다는 것. 또 반대로 시청률이 10%에 머물고 있어도 광고를 완판하는 드라마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서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추적자> 같은 경우는 시청률이 10%대에 머물러 있었는데, 종영까지 광고가 완판된 사례다. 이 드라마는 국민드라마라는 칭호까지 받았는데 그것은 시청률은 조금 낮았지만 화제성이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이다. 이제 ‘국민’이라는 수식어의 기준도 시청률에서 화제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시청률 산정 기준이 가져오는 폐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의 시청률 산정 기준으로는 TV 방송 프로그램을 급격히 노화시킬 수밖에 없다. TV를 통해 보는 시청층이 중장년층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1일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보고에 의하면 지난 10년 사이에 10-30대의 시청률은 절반 이상이 줄었다고 한다. 2002년 13%였던 이들 세대의 평균 시청률이 올해는 5%대에 머물고 있다는 것. 이제 현재의 시청률 산정 기준은 고작 중장년층들의 기호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른바 막장드라마라고 불리는(여기에는 젊은 층들의 비아냥이 섞여 있다) 전형적인 과거의 자극적인 코드들을 답습하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러한 시청률 산정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소위 막장드라마들의 주 시청세대는 중장년층이기 때문이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 기억상실, 신파 같은 코드들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들이다. 결국 젊은 세대의 기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의 시청률 산정 방식은 방송 콘텐츠가 질적으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는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류 콘텐츠의 퇴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금 같은 중장년층에 편향된 시청률에 좌지우지되는 방송 환경 속에서 젊은 세대들의 눈에 걸맞는 새로운 시도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시청률 산정에는 포착되지 않는 화제성 높은 젊은 드라마들을 마니아 드라마로 치부하는 것은 방송 콘텐츠에서 젊은 세대를 소외시키는 행위다. 세상에 마니아 드라마가 어디 있는가. 단지 작금의 시청률 산정이 그 기호를 반영하지 못할 뿐이다.

 

중요한 건 이제 중장년층들조차 이렇게 다양화된 시청패턴에 적응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방송을 TV로 보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만, 이미 90년대 인터넷을 경험한 3,40대의 경우 인터넷 시청이나 모바일 시청이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또 이른바 본방사수라는 실시간 시청보다 자신이 편안한 시간에 보는 ‘다시보기’ 시청 패턴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결국 지금의 시청률 산정 방식은 중장년층의 기호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청률 산정 기준이 나이든 세대의 기호만을 반영하고, 따라서 그런 방송 프로그램들만 높은 시청률이란 왕관을 쓰고 더 많아지는 것은 자칫 TV콘텐츠의 보수화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이렇게 되면 볼 것 없는 젊은 세대들은 TV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한 콘텐츠를 찾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TV의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지금의 미디어 발달 속도로 볼 때 이런 이탈의 속도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커다란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 세대의 기호를 반영하지 못하고, 광고 산정 기준도 되지 못하며 그저 고정적인 TV 시청층의 취향만을 보여주는 이런 시청률 추산을 왜 하는 걸까. 설마 여기에도 매체를 하나의 정치적인 도구로 바라보는 구태적인 시선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지금의 유명무실한 시청률 산정 기준은 빠른 시일 내에 달라져야 한다. IT 강국, 한류를 전면에 내세우는 우리에게 이 두 분야가 합쳐질 수 있는 인프라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 인프라 위에 제대로 거기에 맞는 콘텐츠를 세울 수 있는 새로운 평가방식이 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