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헬로 애기씨’, 로맨틱 코미디의 진화? 조합?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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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애기씨’, 로맨틱 코미디의 진화? 조합?

D.H.Jung 2007. 4. 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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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라는 단어는 어떻게 ‘애기씨’와 만났을까

이 드라마 제목이 수상하다. 영어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헬로’라는 단어에 우리말이지만 잘 쓰지 않는 ‘애기씨’란 제목을 붙였다. 혹자는 이걸 가지고 비판한다. 왜 좋은 우리말 놔두고 어울리지 않는 영어를 조합해 쓰느냐고. 즉 ‘안녕 애기씨’라 하면 안 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안될 말이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바로 ‘헬로 애기씨’라는 제목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의 절묘한 결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전거와 고급승용차가 만날 때
종가집 애기씨 이수하(이다해)가 갈치송(?)을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린다. 한편 교차로에서 부딪치게될 고급승용차에는 TOP그룹의 손자인 황동규(이지훈)가 타고 있다. 부딪치는 순간 이수하는 자전거와 함께 논둑길로 넘어져 갈치들의 세례를 받고, 갈치 한 마리는 황동규가 탄 승용차 뒤 트렁크에 달라붙는다. 이 단순해 보이는 첫 신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진행될 방향과 스타일, 캐릭터, 이야기까지 대부분의 복선이 숨어있다.

즉 앞으로 이 드라마는 자전거와 고급승용차처럼 시골스러움과 도회적인 것이 부딪칠 것이고, 그것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이다해와 승용차를 타고 있는 황동규라는 캐릭터로 구체화될 것이다. 부딪치면서 순간적으로 공중 부양하는 이다해와 자전거, 그리고 반짝이는 갈치들이 날아가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정극이 아닌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이 ‘헬로 애기씨’가 앞으로 그려갈 사항들이다.

몰락한 양반과 성공한 머슴이 만날 때
애기씨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몰락한 양반을 대변한다. 반면 이 종가집에서 머슴 살던 황만복(박인환)은 소를 도둑질해 이를 밑천 삼아 TOP그룹을 일으킨다. 성공한 머슴인 셈이다. 성공한 그룹 회장이지만 ‘본바탕’은 머슴인 그의 숙원은 자기가 머슴살던 종가집, 화안당 사랑채에서 말년을 보내는 것. 손자 황동규를 시켜 화안당을 사들이는 것이 어렵게되자 황만복은 손자를 애기씨와 결혼시키려 한다. 집은 물론이고 종가집이란 뿌리까지 얻기 위함이다.

이것은 박지원이 쓴 ‘양반전’의 변용이다. 다른 점은 ‘양반전’이 양반이 된 지체 낮은 부자를 통해 양반의 위선을 꼬집었다면, ‘헬로 애기씨’는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식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꼬집는다. 이것은 고풍스러운 옛것이 살아있는 시골을 구닥다리라 여기며, 장삿속으로 현대화시키는 작금의 자본주의와도 맞닿는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복잡한 구석이 생긴다. 애기씨라는 캐릭터가 그저 고전적 가치만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애기씨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도시로 오면 좌충우돌 씩씩한 현대여성이 된다. 즉 애기씨는 과거에만 가치를 두고 변화를 무시하는 사람들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가난한 여성과 부자인 남성이 만났을 때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는 바로 가난하지만 당찬 여성이 재벌집 아들과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어찌해 결혼에 골인 혹은 실패했더라가 이야기의 골자가 된다. ‘헬로 애기씨’에서도 그 틀은 같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들어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난하지만 ‘지체 있는 집안의’ 여성이라는 점과 부자지만 ‘위신 없는’ 남성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좀더 확장되는 의미는 가치 중심적인 여성성과 돈이면 다 된다는 단순논리의 남성성의 대결구도이다. 전자가 지금 변화되고 있는 사회(여성성이 강조되는)라면 후자는 과거 ‘개발과 성장’으로 대변되는 남성 중심적 사회를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남성성, 자본주의적 가치로 대변되는 남자와, 여성성(때론 현대적 의미의), 고전적 가치로 대변되는 여자가 서로 만나 티격태격 싸우는 이야기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로 봤을 때 해피엔딩을 예측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 둘은 결국 결합에 어떤 식으로든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가치는 고전주의적인 균형감각이 된다. 어느 한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여 소위 시너지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단순히 남녀의 결합을 넘어서 남자로 대변되는 가치와 여자로 대변되는 가치의 결합을 의미하게 된다.

수많은 작품들의 변용, 진화일까
이 드라마는 재미있다. 그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의 수많은 요소들을 거의 다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 속에서 수많은 고전들과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의 냄새가 풍겨난다. 종가집 애기씨가 재벌집 아들과 만나는 그 구조 자체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지체 없고 무식하기만 한 남성이 지체 있는 애기씨를 만난다는 설정은 온달 콤플렉스를 연상케 한다. 위에도 언급했듯이 몰락한 양반과 성공한 머슴의 만남은 양반전의 변용으로 보이며, 애기씨는 새엄마와 결혼한 아버지의 서울집으로 가게 되는 순간, 콩쥐가 된다. 이 좌충우돌 대략난감의 애기씨가 앞으로 변화하게 될 모습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코드를 예감하게 만든다. 애기씨 옆에 따라다니는 오정숙(장영란)은 향단이의 현대적 변용이고, 황동규 옆에 따라다니는 장대리(문천식)는 방자의 변용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환상의 커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궁’ 같은 성공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무능한 상사 밑에서 할말 다하는 약방의 감초, 공실장은 이 드라마에 와서 거의 똑같은 캐릭터로 곽부장(김광규)이 된다. 시골여자와 서울남자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에피소드들은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정려원과 김래원을 떠올리게 한다. 애기씨의 화안당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서는 ‘궁’의 재미요소들이 눈에 띈다. 로맨틱 코미디가 수많은 전작들과 그 전작들의 현대적 변용을 통해 진화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면 ‘헬로 애기씨’는 바로 거기에 딱 맞는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헬로’와 ‘애기씨’의 만남은 현대와 과거의 만남이자 과거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와 그 현대적 변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이 단순한 조합이 아닌 진화가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