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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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개그맨, 개그현실을 개그하다

D.H.Jung 2007. 4. 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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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형 개그가 담은 개그맨의 진심

언제부턴가 개그맨들은 자기 현실을 개그의 한 요소로 끼워 넣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중간에 어색해지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애드립. “이거 또 편집인데...” 물론 그 어색한 장면은 편집되지 않는다. 웃기지 않는 상황을 애드립 한 방으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집의 공포’라는 소재는 오랜 전통을 가진 개그맨들의 단골 메뉴가 되어버렸다.

개그맨,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하다
이러한 경향은 여타의 공개개그 프로그램 중에서도 ‘개그콘서트’에서 유독 돋보이는데 ‘마빡이’를 비롯해, ‘착한 녀석들’, ‘개그두뇌 트레이닝’,‘개그전사 300’등은 그 계보 상에 있다. 이들 개그의 특징은 대화형 개그라는 점. 진정으로 상대방을 웃기기 위해서 자신의 상황을 100% 활용하는 이 개그들은 관객 혹은 시청자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거나 심경을 토로한다.

물론 대화형 개그는 이제 일방향적 소통으로는 공감될 수 없는 작금의 상황을 반영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요즘은 UCC를 통해 시청자가 개그에 직접 참여하는 시대, 저들끼리 떠들고 저들끼리 웃긴다고 깔깔대는 개그는 이제 그만큼 효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개그맨들은 이제 옆으로 서지 않고 정면으로 서서 시청자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마빡이’, ‘착한 녀석들’ 편집이 두려워?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 “웃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빡이’는 시청자들을 웃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마빡을 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마치 자학처럼 보이지만 그 동작에는 개그맨들이 처한 실제 상황에 대한 진심이 담겨 있기에 공감의 틀이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개그맨들이 처한 현실 또한 제각각의 캐릭터로 보여준다는 것. 마빡이(정종철)와 얼빡이(김시덕), 대빡이(김대범)가 힘겨운 동작을 하며 웃기려 안간힘을 쓸 때 갈빡이(박준형)는 쉬운 동작으로 관객을 웃긴다. 같은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층위를 만들어내자 이것은 단순한 개그맨들만의 현실이 아닌 사회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현실로 확장된다.

이들이 가진 직업으로 인해 생기는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조직에 몸담은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강박관념과 유사하다. 누군가 그들에게 ‘웃기지 못하면(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편집 당한다(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요하는 현실을 이 개그는 꼬집고 있다.

그런 면에서 ‘착한 녀석들’은 그 강요하는 자에 대한 반란을 꿈꾼다. 개편을 앞에 둔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절대로 개편되지 않기 위해 안티 관객들의 입을 막거나, 심지어는 코너의 종료를 알리는 밴드의 음악연주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억압된 이들 존재들이 보여주는 작은 반란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던져준다.

‘개그두뇌 트레이닝’, 간파 당한 개그 뒤집기
개그맨들이 웃기지 못하는 이유는 수많은 개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들이 만든 개그들이 이미 관객들에게 간파 당했기 때문이다. ‘개그두뇌 트레이닝’은 5초 후를 예측한다는 설정으로 이 상황을 전복시켜 버린다. 5초 후의 상황을 간파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는 관객을 개그 속으로 끌어들인 개그맨들은 거기에 오히려 급수를 매겨준다. “이 정도를 예측했으니 당신은 초급 수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쉽게 간파 당하며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었던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쉬운 수준의 개그조차 이 형식 속에 들어가면 웃음을 유발한다. 거기에는 새로운 요소, ‘예측한 일이 벌어진다’는 기대감과, 개그맨과 관객간의 퀴즈대결형식 속에서 ‘맞췄다’는 만족감이 새롭게 창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몸 개그’라는 새로운 형태의 개그가 필수적이 된다. 개그라는 언어적 기능에 충실한 웃음의 요소에 몸이라는 표현수단이 접목된 형태인 ‘몸 개그’는 과거의 저질이라 비난받던 슬랩스틱과는 다른 형태를 띤다. 슬랩스틱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맞고 넘어지는 동작을 보이는 반면에, ‘몸 개그’는 몸으로 언어의 한 부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이것은 오히려 마임에 가까운 것이다.

‘몸 개그’는 따라서 ‘개그두뇌 트레이닝’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퀴즈 형식에서 단순히 말로 해결되는 해답은 그다지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지 않지만 ‘몸으로 표현된 해답’은 그 장면 자체가 우스꽝스럽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코너가 이러한 형식을 가지고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늘 간파되기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이 코너 역시 “웃기기 어렵다”는 말의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이 코너의 특징은 개그맨이 웃음을 준다기보다는 관객들이 ‘스스로 웃음을 찾는다’는 점이다. ‘웃기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맨들은 관객의 머릿속에 기대된 장면을 끄집어냄으로써 웃기는 상황으로의 바꾸어놓은 것이다.

‘개그전사 300’, 같은 현실 앞에 신인과 기성이 껴안다
더 어려운 상황은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로 무장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개그전사 300’은 이 상황을 영화 ‘300’을 패러디해 보여준다. 기성개그맨들은 치고 들어오는 신인개그맨들에 맞서 자칭 새롭다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 시도는 신인개그맨들의 왕(?)으로 등장하는 윤성호에 의해 ‘식상한 개그’로 치부된다.

기성개그맨들은 방패로 무대 한 구석에 수성의 자세를 유지하고 신인개그맨들이 등장해 공격(?)을 감행한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개그콘서트 분석’ 코너이다. 기성 개그맨들을 하나씩 들추어내 그 면면을 비하하면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의 자기반성시간이라 할 수 있다.

‘개그전사 300’은 마치 신인개그맨이 기성개그맨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신인개그맨들의 개그에 윤성호는 역시 “뻘쭘하다”는 말로 비판을 가한다. 이 코너의 진짜 의도는 신인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기성개그맨들이 마련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기성개그맨들은 사실 자신들을 비하해 신인개그맨들의 자리를 마련한 셈이 된다. 이로써 이들의 대결은 대결이 아니라 ‘웃기기 어려운’ 개그맨이란 자리에서 보여주는 선후배간의 끈끈함으로 재확인된다.

개그맨들이 개그하기 어려운 상황을 개그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상황과 연결해보면 이 개그가 우리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는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칼 쥔 사람들 앞에서 잘릴 걱정 앞에 놓인 사람들을 꼭 껴안아주는 따뜻함이 있다. 누구나 할말은 있고, 잘 될 수 있지만 단지 상황이 그걸 막는 현실에서도 할 말은 하자는 것이다. 이 웃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개그맨들의 처절한 개그가 공감을 주는 건 그 속에 그네들의 진심이 담겨있고, 그 진심이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