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괜찮아 사랑이야', 멜로도 병적 치유로 다뤄지는 멘붕의 시대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괜찮아 사랑이야', 멜로도 병적 치유로 다뤄지는 멘붕의 시대

D.H.Jung 2014. 8. 24. 09:46
728x90

<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는 왜 치료가 될까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여타의 멜로드라마들과는 다른 지점들이 발견된다. 그것은 멜로드라마 속의 사랑이 그저 남녀 간의 화학작용이나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걸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치유로서 다뤄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크건 작건 정신적인 아픔을 겪고 있고 그걸 치유해주는 건 다름 아닌 사랑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에는 그 뉘앙스가 그대로 들어가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장재열(조인성)과 그의 형인 장재범(양익준) 그리고 그 집안이 겪은 이야기는 10년이 넘은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까지도 그들의 삶 한 가운데 고스란히 커다란 상처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계속 덧나가는 중이다. 문제의 발단은 장재열의 의붓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이다. 그 계속되는 폭력 앞에 항거하다가 결국 그 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된 것. 넘어지다 장재열의 손에 들린 칼에 찔려 죽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은 장재범이 밀쳤기 때문이다.

 

사고로 처리될 일이 사건이 된 것은 장재범이 장재열을 보호하려다 생긴 일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증언하라고 말한다. 2년 정도 감옥 생활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10년이 넘는 구형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게 된다. 장재범이 그토록 장재열을 죽이려 달려들고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건 그러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심리 상담을 하는 조동민(성동일)이 아미탈을 통해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동안 외로웠겠다고 말하자 그가 오열하는 건 그래서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길 그토록 희구해왔던 것이다.

 

장재범이 감옥 안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낼 때 감옥 바깥에 남은 장재열이나 그 어머니 역시 자신들만의 감옥에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장재열은 한강우(디오)라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환영으로 데리고 다닐 만큼 과거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어린 시절 폭력으로 점철됐던 그 무너진 옛집 주변을 서성거린다.

 

장재열을 치유시키는 것은 결국 지해수(공효진)의 사랑이다. 장재범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상처투성이로 나타난 그를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안고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하듯 등을 토닥여준다. 그러자 괜찮은 척 해왔던 장재열은 숨겨왔던 내면의 아픔들이 바깥으로 비어져 나오는 걸 느낀다. 그건 상처지만 그렇게 공유되는 상처는 치유의 첫 걸음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가 치유로서 그려지고 있는 건 어쩌면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아픔과 상처가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멘탈 붕괴의 시대라고 이 시대를 규정하듯이 우리는 너무나 아픈 비극적인 일들을 눈앞에서 겪고 있다. 장재열의 가족이 현재 겪고 있는 비극이 의붓아버지의 폭력에서 비롯됐듯이 어쩌면 우리 사회가 현재 겪고 있는 상처들은 과거 개발성장시대의 내재되고 내면화되었던 폭력들에서 비롯되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돌려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지금은 사랑도 치유로서 그려지는 시대가 됐을까. 그저 아름다운 사랑 따위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시대에 사치나 허영처럼 여겨지는 건 아닐까. <괜찮아 사랑이야>가 전해주는 그 깊은 감동과 위안은 그래서 거꾸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상처들을 환기시켜준다. 이른바 멘붕의 시대<괜찮아 사랑이야>의 멜로는 병적 치유로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