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도 폄하도 없는 <오만과 편견>의 검찰
MBC <오만과 편견>이 다루고 있는 건 검찰이다. 흔히들 ‘떡검’ 같은 표현으로 얘기되듯 검찰에 대해 일반 대중들이 갖고 있는 정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곳은 왠지 권력형 비리가 연루된 것처럼 보이고, 때론 정치가 정의를 덮어버리는 곳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대중들의 이런 생각이 그리 틀린 것만도 아니다. 검찰은 대중들에게는 ‘오만과 편견’이 뭉뚱그려진 어떤 집단처럼 다가온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검사를 다루는 드라마가 많이 나오지 않고(변호사는 많다), 나온다고 해도 그리 긍정적으로만 그려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자칫 검사들을 감싸주고 비호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가는 시청자들의 비난만 사기 쉽다. 그렇다고 검사를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폄하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어렵다.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주인공을 세워서 드라마를 끌고 가겠다는 건 모험이나 다름없다. 바로 이 점은 <오만과 편견>의 놀라운 점이다. 이 드라마는 검사를 세워놓고 미화도 폄하도 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라는 존재가 늘 정치와 권력에 휘둘리는 모습으로 굳어져 있어서인지 지금 세상의 꼴은 한 마디로 형편없다. 비리가 판을 치고 정의는 돈 앞에 무릎 꿇기 일쑤다. 이런 비리들은 무수한 사건사고를 만들어낸다. 정의 없는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니 생기는 사회의 증상들이다. 이 정의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은 너무나 크지만 그걸 해결해주리라 기대하는 건 검찰이 아니다. 그래서 ‘나쁜 놈들 잡는 나쁜 놈들’이 오히려 더 대중들의 마음에 다가온다. 많은 우리네 영화, 드라마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건 어딘지 삐딱하게 되어버린 서민들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인천지검 중수부장 검사 문희만(최민수)이다. 그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우리가 검찰하면 떠올리는 그 이미지와 그걸 배반하는 이미지 양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인물이다. 그는 결코 바른 검사는 아니다. 상부에서 덮으라면 사건을 덮는 검사고 무엇보다 자신의 실적과 안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검사다. 덮으라는 사건을 구동치 수석검사(최진혁)가 계속 수사하겠다고 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막아도 구동치가 계속 수사를 할 것을 알고 있다. 내심은 자신도 수사를 원하지만 자신은 만일 잘못됐을 때의 책임에서조차 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문희만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나쁜 놈들’을 잡으려는 마음이 깊지만, 오랜 검사 생활을 통해 검찰이라는 조직의 시스템을 잘 알고 있다. 그 바위에 무모하게 계란을 던져봐야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입는다는 것을. 그래서 문희만은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전까지 외부에 패를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수습검사 한열무(백진희)에게 말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구동치와 한열무 역시 그 위치에서 검사로서의 모습을 개연성 있게 그려낸다. 한열무는 수습이기 때문에 순수한 열정이 가장 큰 무기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으로 사건을 그르치기도 한다. 또 구동치나 문희만이 하는 일종의 페이크를 실제로 알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한다. 구동치는 한열무와 문희만의 중간 지점에 놓여 있다. 그는 문희만이 알고 있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고 동시에 한열무 때 자신도 가졌을 그 순수한 열정이 아직도 식지 않고 있다. 즉 이들 역시 ‘나쁜 놈들’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은 또한 검찰 내부 시스템과도 갈등을 일으킨다.
문희만이라는 인물이 중요해지는 건 범인을 알고 있어도 수사를 더 펼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는 이 검찰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면서 동시에 사건을 해결해나가는가의 키를 그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검찰을 다루는 꽤 괜찮은 방식이다. 일방적인 미화도 폄하도 아닌 한 직업인으로서의 고민들이 거기에는 묻어난다.
무엇보다 문희만이라는 역할을 최민수라는 베테랑 연기자가 맡게 됐다는 건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민수는 문희만이라는 인물을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로 세워놓는데 성공하는데 이것은 이 드라마에서 검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문희만의 감춰진 속내는, 진실과 정의를 원할 수도 있고, 사실은 현실을 원할 수도 있다. 그 우물대는 대사 속에는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한 직업인의 여러 면들이 유추된다.
<오만과 편견>은 그래서 검찰과 범죄를 그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와는 걸맞지 않아 보이는 제목처럼 우리가 흔히 무언가를 바라볼 때 단순화함으로써 생겨나는 ‘오만과 편견’을 다루는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간단한가. 물론 자칫 잘못하면 검찰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기 딱 좋은 이 드라마가, 그래도 괜찮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건 미화나 폄하 같은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서 무게를 딱 잡아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최민수다. 실로 그가 있어 <오만과 편견>으로서는 천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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