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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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뭐 그리 복잡한가, 그저 '삼시세끼' 먹는 일일뿐

D.H.Jung 2014. 12. 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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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보다 빼기 나누기, 절실해진 삶의 다이어트

 

기계도 쉬지 않고 돌리면 과부하로 고장 나기 십상이다. 하다못해 사람은 오죽할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이른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은 그 이름부터가 살벌하다.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난 어느 순간 무력감에 빠지는 상태. 이 상태에 빠지면 잠이 잘 안 오거나, 혹은 자꾸만 졸리고, 우울감을 넘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인지능력 저하’, 즉 시쳇말로 멍 때리는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 자칫 사고의 위험까지 생겨날 수 있다고 한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쉬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일에 몰두하다보면 생겨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하는데, 만일 이렇다면 우리네 직장인들의 대부분은 이 증후군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루 10시간이 뭔가. 그것도 모자라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게 우리네 직장인들의 일상이 아닌가. 실제로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남녀 직장인 6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74.7%가 스스로를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작년 서점가를 강타한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은 그 제목만으로도 직장인들의 손을 잡아끈다. 직장인들은 그 멈춘다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미생> 신드롬을 들여다보면 거기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일중독자들라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일중독자들은 심지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일 안하면 좀비 취급하는 사회의 노동 강박증이 얼마나 심각한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처럼 점점 컴퓨터 기능이 우리 몸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우리의 일상은 쉬면서도 쉬는 것이 아닌 상태에 놓여지게 되었다. 움직이는 컴퓨터(?)는 움직이면서 우리를 일하게 한다. 끊임없이 전화가 울리고, 문자가 들어오고, 메일이 날아온다. 그 때마다 우리는 신경이라는 안테나를 곧추 세우고 일 속으로 빠져든다. 주말을 쉬고 났는데도 별로 쉰 것 같은 느낌이 영 들지 않는 건 사실 몸만 집으로 왔을 뿐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되면 좀 더 단순한 삶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 된다. 뭔가 비워내지 않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태가 되는 것. 이럴 땐 차라리 아무도 없는 산골 같은 데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게 상책이다. 최근 <12>부터 <꽃보다 할배>, <꽃보다 청춘> 등을 만들어 여행의 트렌드를 바꾼 나영석 PD가 새롭게 들고 온 <삼시세끼>가 잔잔한 열풍을 만들고 있는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강원도 산골 농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게 다인 이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로서는 놀라운 8% 시청률(이건 지상파도 흔치 않은 시청률이다)을 내고 있는 건 복잡한 세상에 대한 염증과 단순한 삶에 대한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아침 차려 먹고 나면 점심 준비하고, 점심 차려 먹고 나면 저녁 준비하는 삶. 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은 바로 그 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한 프로그램이 됐다.

 

다이어트 열풍이라지만 빼야할 건 살만이 아니다. 이미 일과 욕망으로 덕지덕지 살이 붙어버린 우리네 비대해진 삶 역시 다이어트 대상이다. 개발시대의 삶이 성장만을 목표로 하는 더하기의 삶이었다면 이제 21세기에 맞닥뜨린 우리네 삶은 빼기와 나누기의 삶이어야 한다. 비만이 성인병을 가져오는 것처럼, 삶의 비만은 정신적인 부작용을 초래한다. 번아웃 되기 전에 그 에너지를 나누고 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