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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꿈? 그저 보통이 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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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다큐 프로그램들이 보여주는 것

강직성 척추염을 앓아 허리가 90도로 꺾어진 20대 청년이 말한다. “포기했습니다. 포기하게 되더라구요. 나이는 20댄데 몸은 70대니.” 몸이 뒤틀려 삶의 희망을 저버린 청년에게 PD가 꿈을 묻는다. “꿈요? 그저 보통이 되는 거요. 허리를 일자로 쫙 펴고 자는 거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동네를 걸어보는 거요. 그럼 정말 좋을 거 같아요.” 병원 다큐 프로그램, ‘닥터스’에서 소개된 새우등 청년 진백씨의 이야기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 5회에 걸쳐 방영되어 호평을 얻었던 ‘휴먼다큐 사랑’. 특히 2회에 방영되었던 ‘안녕 아빠’편은 죽음을 앞둔 아빠의 가족과 함께 보낸 마지막 날들을 담담하게 담아내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5편 중 단 1편(벌랏마을 선우네)을 빼곤 나머지 4편 모두 병원이 등장한다.

뉴스다운 뉴스 보기 어려운 세상에 진짜 살아가는 사람들의 훈훈한 뉴스를 전해주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이 프로그램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는 것은 병원의 이야기다. 강화도에서 한 순간의 사고로 입은 화상으로 55년 동안 바깥세상 구경을 못한 화문석 할머니의 이야기, 2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아픈 남편을 지켜온 명랑 아줌마, 김옥선씨의 이야기에도 병원은 여지없이 등장한다.

이런 병원 다큐 혹은 병원 다큐 성격을 가진 영상들에 우리가 흔히 붙이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휴먼다큐’. KBS가 지난 98년 6월부터 2005년 10월까지 7년에 걸쳐 방송한바 있는 ‘영상기록 병원24시’의 후속으로 방영되고 있는 ‘현장기록 병원’ 역시 ‘메디컬 휴먼다큐’를 지향한다. MBC의 ‘닥터스’는 두 가지 포맷을 담고 있는데 ‘응급실 24’는 리얼다큐를, 그리고 ‘미라클’은 역시 휴먼 다큐를 지향한다. 가정의 달 특집으로 방영된 5부작 다큐는 아예 ‘휴먼다큐 사랑’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에 굳이 휴먼이란 단어를 붙인 것은 병원이란 공간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다. 만일 병원이란 공간에 대해 그저 아픈 사람 치료하는 곳 정도의 기능적 해석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까지 아파서 병원을 찾아보지 않았던 사람이거나, 자신의 몸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아파 병원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병원이란 공간이 가진 특별함을 이해할 것이다. 그 곳에는 죽어 가는 사람이 있고 살리려는 사람이 있다. 그 접점은 물리적인 수술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거기엔 그들의 사연이 교차한다.

‘휴먼’이란 단어는 이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제 아무리 기계처럼 감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래서 자신도 결국 아프고 병에 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일 지라도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스스로 사람이라는 걸 자인하게 된다. 어차피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앞에 두는 순간부터, 병원 밖에서 꿈틀대던 거대한 욕망은 허망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카메라는 그저 물리적인 수술실의 메스의 놀림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메스를 든 사람의 이야기와 그 메스 앞에 누워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리고 때론 기적 같은 소생과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을 담는다. 그 순간, 환자와 의사의 눈물은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아 나도 사람이로구나’하는 감동으로 전달된다.

병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벗어버린 욕망이란 외피 탓일까. 그저 사람이란 알맹이들이 꿈꾸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보통이 되는 것’, 혹은 ‘평범한 삶’이 그들의 꿈이다. 그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들까지 사투에 가까운 노력을 한다. 병원 다큐가 시사하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 앞에서 거대한 욕망이란 신기루 같은 것이며, 평범하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동 없는 세상에 병원 다큐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잊고 있던 자신의 실체와 다시 만남을 주선한다는 점이다. 만일 당신이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 당신과 당신의 실체가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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