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보는 소녀>가 남궁민을 활용하는 방식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쇄살인마 권재희(남궁민)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해졌을 지도 모른다. 멜로와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와 형사물이 공존하는 이 드라마는 그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때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진 소녀 오초림(신세경)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최무각(박유천)의 알콩달콩한 멜로에 자칫 긴장감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일찌감치 권재희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밝혀놓은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의 주도면밀함을 알리바이를 꾸미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세웠다. 철두철미하고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며 대단히 영리한 두뇌를 가진 연쇄살인마.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드러내자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의 위협을 받는 오초림이나 최무각 또는 오초림의 아버지인 오재표(정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됐다.
최근 몇 회 동안 드라마의 엔딩에 권재희를 세워놓은 건 그런 점에서 확실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가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채고 마치 어떻게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엔딩 크레딧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 하나는 장난처럼 죽일 수 있는 연쇄살인마이면서도 권재희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그런 단점을 부여함으로서 극에 긴장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사진을 훔쳐 뒷조사를 하려는 권재희와, 그 사진을 바꿔 그가 영원히 오초림을 알아볼 수 없게 하려는 최무각과 형사들의 두뇌싸움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권재희라는 극악의 캐릭터를 제대로 세워놓음으로써 드라마가 아주 작은 단서나 물건 하나로도 쉽게 극적 긴장감이 가능하게 한다는 건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제는 그가 누군가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짓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고, 보호해주고픈 오초림 같은 주인공 옆에 서기만 해도 끔찍해진다. 그는 특별히 끔찍한 행위를 드러내 보인 적이 별로 없다. 생각해보라. 권재희가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는 유혈이 낭자했던 장면이 있었던가를. 그런 구체적인 폭력의 장면 없이도 이런 효과를 낸다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거기에는 남궁민이라는 연기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다가왔던 그는 어느 순간 연쇄살인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웃음을 섬뜩한 살기로 바꿔놓았다. 어딘지 무심한 듯한 두 눈이 무언가를 멍하게 응시할 때 시청자들은 이 인물이 어딘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박유천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스릴러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 역시 괄목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남궁민이라는 존재감이 없었다면 이 연기들 역시 밋밋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 하나가 드라마에 만들어내는 힘은 그래서 절대적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를 계속 해서 궁금하게 하고 보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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