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록 병원’에서 본 인간의 위대함
온 몸에 붕대를 칭칭 동여맨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전신 85%의 화상을 입은 14살 소년은 또래 소년들이 그렇듯이 아파서 칭얼대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일반병실로 옮기고 싶다는 소년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불길 속에서 목숨을 걸고 구해낸 아버지가 잘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충격을 받을까봐 쉬쉬하다가 아버지는 일반병실로 옮겨갔다고 한 가족들의 거짓말을 믿고 있는 소년.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소년, 불길 속에서 아버지를 구하다-그 후’편에서 수종이의 투병기를 감동적으로 담아낸 ‘현장기록 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란 현장의 생생한 기록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특별히 재미를 위해 만들어놓은 연출도 없고 그저 무미건조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을 뿐인 이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왜일까. 거기에는 여기저기 주사바늘이 꽂힌 채 그저 누워 있는 환자들의 모습과 그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려고 노력하는 의사,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볼 뿐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환자가족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수종의 누나들과 함께 찾아간 소년이 아버지를 구한 전남 여수의 집은 당시의 끔찍함의 흔적을 여전히 남기고 있다. 도움을 청하러 들어간 옆집 대문에는 아직도 수종의 손바닥 자국이 찍혀있고 그 집 대청마루에는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잔해 속에서 수종의 누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찾아낸다. 정작 구해내려던 아버지는 사망해 흑백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의 무사를 기원하는 소년의 독백은 짧은 순간, 잊고 있던 인간의 위대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의 힘이 소년에게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기원이 간절했던 것인지, 소년의 몸은 몰라보게 좋아진다. 혼자 밥을 떠먹고, 혼자 걸어다니는 인생의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는 소년에게 어머니는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린다. “빨리 일어나서 엄마랑 살자”하는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도 그저 멍하니 눈물만 흘린다.
‘현장기록 병원’이란 프로그램이 힘을 발하는 것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죽음 앞에 내몰린 사람들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거기에는 소년의 속을 알 수 없는 고통과 투지 속에 숨겨진 어쩔 수 없이 가녀린 소년의 마음이 있고, 그런 아들 앞에서 강한 척 하지만 결국 아들의 무릎에 고개를 숙이고 마는 어머니의 마음이 있으며, 그런 그들에게 좀더 아프지 않고 좋은 치료를 해주지 못해 인간적인 고뇌에 빠지는 의사들의 마음이 있다. 병원은 이 프로그램이 그렇듯이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그런 위대한 인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생과 사의 기로에 선 맨 얼굴의 위대한 인간들을 발견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자신 속의 위대함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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