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현실성 사라진 드라마의 문제
만화 같다’는 표현은 하나의 관용구가 되었다. 만화 자체의 가치를 비하하는 얘기가 아니다. 만화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펴다보니 현실성을 잃었다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다. 지금 현재 <가면>이라는 드라마가 그렇다. SBS <가면>은 도플갱어라는 낯선 설정을 가져와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만화 같다.
'가면(사진출처:SBS)'
<가면>이 타인의 삶을 대신 사는 ‘가면’의 설정을 가져온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태생으로 규정되는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안간힘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가면을 쓰고 상류사회에 입성한 여인은 그 정체성의 혼란과 욕망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민을 들여다보기보다는 가면의 부부생활 속에서 피어난 달달한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것 또한 상류사회의 쇼윈도 부부가 보여주는 가면의 삶을 탈피하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여인이 본격적인 사업으로 뛰어들어 수완을 발휘하고 국회의원인 아버지(실제 아버지는 다른 이지만)의 정치적인 행보까지 밀어주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이 여인의 사랑과 성공의 판타지로 빠져들수록 이야기는 현실성을 점점 잃어간다.
저 <상류사회>라는 드라마를 생각해보라.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뿌리 깊은 계급의식을 갖고 있다. 그러니 <가면>의 변지숙(수애)이 서은하 역할을 척척 해내는 걸 뛰어넘어 사랑에 있어서도 또 사업에 있어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건 놀라운 일이다. 물론 그녀가 그렇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오히려 그녀가 살아온 변지숙의 삶을 통해 얻은 경험들 덕분이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이 그렇게 순진한가.
<가면>은 막연히 서민들의 세계와 상류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마치 선과 악을 구분하듯 다루고 있다. 즉 서민들의 세계가 선이라면 상류사회는 악이다. 물론 그 상류사회 안에도 민우(주지훈) 같은 선이 존재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민우는 그 세계에서 도태된 인물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는 석훈(연정훈)같은 절대 악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런 민우를 오히려 챙기고 보호하는 건 변지숙이다. 이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백화점의 평범한 직원이었던 그녀가 상류사회의 살벌한 이전투구의 세계 속에서 승승장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재벌가 이야기들을 드라마를 통해 봐오면서 알게 된 것이다. 저들의 세계는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보여주는 상류사회에서는 돈이면 한 사람의 삶을 일으키기도 또 망가뜨리기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류사회>에서 사랑하는 남녀들은 그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계급의식의 차이 때문에 거대한 장벽 앞에 서 있는 듯한 암담함을 느낀다. 그런데 타인의 얼굴이라는 가면 하나를 쓰고 모든 게 그리 쉽게 된단 말인가.
변지숙이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고 자신의 본래 가족에게 그 사업장 하나를 덥석 안겨주는 이야기가 차라리 PPL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그러려니 할 것이다. 하지만 가면을 통한 상류사회의 이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예리하게 드러내 보여지기 보다는, 한 서민의 상류층 가면 놀이 판타지에 빠져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마취적이다. 달달한 판타지도 좋지만 좀 더 현실성 있는 드라마를 그리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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