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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귀신님', 박보영도 김슬기도 새롭게 보이는 건옛글들/드라마 곱씹기 2015. 7. 20. 09:55728x90
'오 나의 귀신님'에서 '복면가왕'이 보인다면
tvN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은 나봉선과 신순애라는 두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한다. 본래 나봉선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몸으로 들어온 귀신 신순애(김슬기)는 굉장히 적극적이며 자기감정 표현을 숨기지 않고 하는 인물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지어 ‘엉큼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그녀는 늘 셰프인 강선우(조정석)를 어떻게 ‘자빠뜨릴까’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 나의 귀신님(사진출처:tvN)'
아마도 그것은 신순애의 성격이 들어간 것이겠지만, 그렇게 엉큼할 정도로 적극적인 건 그녀가 죽은 귀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녀귀신이라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을 경험한 그녀는 가끔씩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얘기를 꺼내놓는다. 뭐가 걱정이냐며,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오늘 맛있게 먹고 마시고 즐기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삶이 추구해야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또 그렇게 실천하려 한다.
이 신순애의 성격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핵심적인 재미다. 그녀의 도발은 강선우를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들고 당황시킨다. 그것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또 셰프와 보조라는 직장 내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역전된 모습이다. 그녀는 말로만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실제로 틈만 나면 강선우의 허벅지를 더듬는다. <시티헌터> 같은 만화에서 여자들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고 코피를 터트리던 남자 주인공이 있었지만, 잘생긴 남자에게 이처럼 껄덕대는 여자 캐릭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도발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이 인물은 불편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녀의 엉큼한 행동은 보는 이들을 빵빵 터트려주면서 동시에 그 귀여운 매력에 빠뜨린다. 많은 이들이 이것이 가능한 게 다름 아닌 박보영이라는 연기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박보영의 대체 불가 귀요미 이미지는 그녀가 그 어떤 엉큼한 짓을 해도 그 모든 걸 귀여운 짓으로 변화시킨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생겨난다. 그녀가 그렇게 밝고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그녀의 외적인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 때문이라는 점이다. 나봉선은 첫 회에 그 본래의 성격으로 등장했을 때만 해도 별 매력이 느껴지지 않던 인물이었다. 소심하고 어눌하기까지 한 그녀는 심지어 답답한 캐릭터라 여겨졌었다. 하지만 김슬기가 연기하는 신순애라는 캐릭터가 빙의되면서 나봉선은 매력이 철철 넘치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박보영이라는 연기자의 매력은 그 외적인 것보다는 성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김슬기는 여러 연기를 통해 시원시원한 성격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할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성격 좋은 주인공의 친구 역할이 그녀가 늘 맡던 역할이었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필모그래피를 확고하게 만들면서 성장해온 배우다. 그녀는 확실히 연기의 맛을 낼 줄 아는 연기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친구 역할로 주로 출연하게 된 건 그녀의 외적인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외모 지상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단지 우리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연기를 잘하고 또 가능성도 확실히 많이 보이는 김슬기에게 이러한 선입견과 편견은 넘어야할 벽이 아닐 수 없다.
김슬기가 박보영에게 빙의되어 캐릭터가 완성되는 <오 나의 귀신님>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MBC <복면가왕>이 떠오른다면 거기서 연기자와 캐릭터 이미지 사이에 우리가 생각했던 편견과 선입견이 벗겨져나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박보영에 빙의된 김슬기가 비로소 박보영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그 설정은 외적 이미지만큼 중요한 캐릭터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김슬기는 마치 박보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보이고 있는 셈이니까.
물론 이건 드라마 속 캐릭터 설정의 이야기이지 박보영과 김슬기의 이야기는 아니다. 김슬기가 빙의한 박보영의 연기 또한 박보영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드라마의 설정이 주는 메시지는 읽을 수 있다. 김슬기가 빙의되지 않던 박보영이 별 매력을 보이지 못했던 것처럼, 외적 이미지는 내적 캐릭터를 만나지 않으면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적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나느냐에 따라 연기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김슬기는 우리가 막연히 외적 이미지로만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배우다. 물론 이런 양자의 캐릭터를 모두 끌어안고도 매력이 철철 넘치는 박보영은 말할 것도 없다. <복면가왕>을 떠올리게 만드는 <오 나의 귀신님>은 그래서 연기자의 이미지와 캐릭터가 만나 만들어내는 매력이라는 것이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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