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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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무도', 이런 건 상시적으로 방영하면 안 될까

D.H.Jung 2015. 9.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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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무도>, 그 어떤 역사 교육보다 효과적이었던 까닭

 

그저 전 세계로 떠나는 배달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기획한 배달의 무도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일단 배달하는 것이 음식이라는 점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생활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다름 아닌 고향의 음식이 아닐까. 거기에는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고향의 기억들이 방울방울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 가족과 친지가 보낸 음식을 먹으며 그 마음을 나누는 이 훈훈한 이야기는 그저 배달이상의 의미를 담아냈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의 감동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달의 무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본 우토로 마을의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곳 우리 동포들의 삶이 하하와 유재석에 의해 담겨진 데 이어, 이번에는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란을 일으켰던 하시마섬의 묻혀지고 있는 아픈 역사가 하하와 서경덕 교수의 두 차례에 걸친 방문으로 소개됐다.

 

파고가 높아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굳이 다시 찾아가 하시마 섬에 직접 발을 딛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제 징용되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네 동포들의 아픈 이야기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 등재되어 그저 일본 근대화의 상징처럼만 포장되어 있는 그 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아픈 역사를 까마득히 모른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당시 하시마 섬의 일본인 광부들은 제복을 차려입고 당시 무려 50만엔에 달하는 봉급을 받으며 풍족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반면, 이제 90줄을 넘기신 하시마섬의 생존자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진 당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의 삶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팬티 한 장 입고 온 몸에 탄가루를 뒤집어쓴 채 탄광에서 일했던 어르신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배고픔에 대한 호소로 당시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을 하시다 돌아가신 어르신들은 사람들의 발길이 도저히 닿기 어려운 외진 곳에 초라하게 합장되어 있었다. 합장되기 전, 그들의 인명부조차 모조리 태워버려 그 분들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덮여진 채, 쓸쓸한 비석 하나로 남아있는 그 곳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찾아간 하하와 서경덕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그 곳을 찾은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챙겨 간 그분들이 그토록 먹고 싶었다던 쌀밥 한 그릇과 뜨끈한 고깃국은 저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유재석이 했던 말처럼 너무 늦어 죄송한 배달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우토로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하시마 섬의 아픈 역사는 여러 차례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하시마섬이 아픈 역사를 숨긴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당시만 해도 신문지상에서는 이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뉴스나 다큐멘터리 같은 매체를 통한 이런 보도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입시경쟁 속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이 몇 주에 걸쳐 한다고 해도 과연 이번 배달의 무도가 불러일으킨 관심만큼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이라는 가장 뜨거운 예능 프로그램이기에 이번 우토로 마을이나 하시마 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즐거움과 재미를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재미 역시 그저 휘발되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무한도전>은 계속 해서 새로운 도전들을 즐겁게 추구해야하겠지만, ‘배달의 무도라는 아이템은 일회적으로 끝내기에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이런 프로그램이야말로 상시적으로 방송이 해줘야 하는 아이템이 아닐까. ‘배달의 무도는 분명 다큐보다 시사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들과 가치들을 일깨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