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 김꽃비의 시선으로 본 노은면의 따뜻함
노은면(老隱面). ‘늙어서 숨는 곳’이란 뜻이란다. 그 곳에 15년 차 여배우 김꽃비가 갔다. <SBS스페셜> ‘여배우와 노은면 여자’. 지난 번 남규홍 PD가 만재도에서 했던 ‘여배우와 만재도 여자’의 연작이다. 당시 만재도에 갔던 여배우 이은우는 그 곳의 여자들의 삶을 듣고 겪으며 그 신산함에 눈물을 펑펑 쏟았었다. 반면 노은면에 간 김꽃비는 담담한 편이다. 담담하게 그 곳에 살아가는 여자들의 삶을 공감했다.
'SBS스페셜(사진출처:SBS)'
사람들은 김꽃비가 여배우인 줄 모른다. 월세로 네 명이 함께 산다는 셰어하우스가 있는 영등포 청과물 시장에서는 그녀가 버젓이 다녀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니 노은면에서 그녀가 배우라는 건 더더욱 모를 일이다. 스스로 사실은 영화배우예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노은면 사람들은 조금 놀라는 얼굴이다.
늙어서 숨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긴 곳이어서 일까. 노은면은 김꽃비에게는 영화 세트장만 같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가게 간판이다. 대동약방, 서울미용실, 노은공판장, 노은정미소, 노은다방, 우일 떡 방앗간. 간판 이름만 봐도 요즘에는 사라졌거나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옛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세트장철머 낯설고 지금은 사라진 것처럼 여기지만 그런 면소재지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1천여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저 지나치면 있는 지도 모를 그 곳, 주민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보다 훨씬 빠른 아침을 맞는다. 한때는 금광으로 유명해 작은 서울이라 불리기도 했다는데 한때 시골의 유지를 상징하던 양조장은 문을 닫았다. 한 아저씨는 그 문 닫은 양조장 얘기를 하며 “다들 허덕허덕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 속에 시골살이의 만만찮음이 느껴진다.
김꽃비가 만난 노은면의 여자들은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을 풀어낸다. 가마골에서 금광일 하다가 읍내로 내려와 월세를 전전하며 슈퍼를 하다 지금은 집을 사서 정육점 식당을 낸 아주머니, 전복짬뽕이 유명해 줄 서서 먹는다는 중앙관 아주머니, 또 그 동생이 노은면 사내와 결혼하는 걸 막으려 찾아왔다가 그 곳에 자신도 자리를 잡았다는 중앙관 아주머니의 언니, 사람 오는 게 귀찮아 문을 닫아걸고 하루에 한 번씩 지인들과 술 한 잔 하는 낙으로 살아간다는 부동산 아저씨와 그 아저씨가 끓인 추어탕에 넣을 수제비 반죽을 해주며 아저씨 뻥에 결혼했다는 아주머니. 서울 출신으로 내려와 서울미용실을 하며 너무 외로워 15년째 스맥다운, WWF 같은 프로레슬링을 본다는 아주머니...
“이 후진 데 뭐가 볼게 있냐”는 초가집 호프집 최사장님 말처럼 마치 숨겨졌거나 아니면 소외됐던 노은면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이 넘치고 꽤 살만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곳으로 다가온다. 가장 유지라는 정미소 아주머니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침 저녁으로 친정을 찾아와 불편한 아버지를 씻기고, 짬뽕으로 대박낸 중앙관 아주머니는 남편이 새벽같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떼온 싱싱한 해물들을 이 곳 저 곳 나눠주기 바쁘다. 방앗간 주인 아주머니는 6년째 치매라는 남편을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 맡기고 돌아오며 그 손을 놓기가 엄청 힘들었다고 말한다.
찹쌀로 틈새시장을 개척해 잘 유지되고 있는 정미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작은 정미소의 부부는 옆집이 잘 되는 게 전혀 부럽지 않다며 건강만 지키며 살 거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정미소는 왜정시대부터 있었던 곳이란다. 그렇게 욕심을 버렸다 말하면서도 아저씨는 곧 도로확장공사를 하면 없어질 정미소가 못내 아쉬운 얼굴이었다.
사실 알려지지 않으면 묻히고 소외되는 게 우리네 삶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래서 남규홍 PD는 이런 외진 곳을 찾아 시선을 주는 것일 게다. 조금 촌스럽거나 트렌디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 그것들에 가까이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자 의외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놀라운 삶의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오죽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 대문부터 활짝 열어 놓는다고 할까. 그렇게 자신의 생사를 알리고 싶었을 할머니의 마음이 읽혀진다.
그러고 보면 여배우 김꽃비도 노은면과 거기 사는 사람들을 사뭇 닮았다. 길거리를 그냥 다녀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따뜻함이 예쁘게도 느껴지는 배우다. 휘황찬란한 것들은 당장 우리의 시선을 잡아끌지만 따뜻한 사람의 정은 서서히 들여다볼 때 느껴지는 법이다. 숨겨져 있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마저 숨을 필요는 없는 존재들. 노은면이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김꽃비 같은 좋은 느낌의 여배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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