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커프’
그동안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진화를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현실이라는 축이 존재했다. 그들은 남성들의 낙점을 기다리던 수동적인 신데렐라에서 차츰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해왔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남성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이가 되기도 했고(‘여우야 뭐하니’,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등), 촌스러운 이름이나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와 내면(‘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이 되기도 했다. 물론 빈부의 차이나, 태생의 문제는 대부분의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그것들은 형태만 달랐지 결국 모두 남성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무엇이 여성들을 꿈꾸게 했나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이들 남성성의 그늘(제도) 안에서 꿈꾸던 여성시청자들을 오롯이 여성 자신에 집중시키면서 꿈꾸게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이 꿈꾸는 곳이다. 그곳에는 저 트렌디 드라마에서 아직 왕도 되지 않은 왕자가 왕처럼 권위적인 폼을 잡는 그런 얼치기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빈부, 사회적 위치, 나이, 외모, 심지어는 성별까지 그 어느 것도 편견이나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는 무균질 순수의 왕자들이 그 곳에는 소년처럼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기초 얼개는 그러니까 이 여성들을 꿈꾸게 만드는 왕자들이 존재하는 카페 공간이 된다. 그 곳을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기웃거린다. 그녀는 사실상 현실 사회에서라면 가질 수 있는 모든 편견을 짊어진 여성 캐릭터. 번듯한 집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며,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여성스러운 것도 아닌 이 여성은 그러나 남장을 하는 순간, 그 모든 편견이 사라진다. ‘남자니까’라는 한 마디로 해결되는 이 상황은 정확히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남장을 시키면서까지 뒤집고 싶은 대상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 남장여자가 들어간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작가의 욕망이 투사된 공간이다. 편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왕자들로 가득한 이 곳은 따라서 여성들의 꿈의 공간이 된다. 현실에서 가장 낮게 취급되던 캐릭터가 모든 것을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공간이 그곳이니까. 가족을 부양하는 일로 꿈 자체가 ‘엄마와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던 이 소녀는 바리스타라는 그 이상의 꿈을 갖게된다. 최한결(공유)이라는 잘 생기고, 예의바르고, 능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라면은 냄비뚜껑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걸 알 정도로 털털한 왕자가 자신을 (남자라고 오인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멋진 건, 하나 하나가 다 왕자의 면면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
은찬이 여자라는 게 드러난 이후 드라마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후반부야말로 이 드라마의 의미를 더 깊게 해주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청춘 멜로 드라마들이 사랑의 결실과 함께 끝나는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부분에서 일을 끄집어낸다. 일과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부딪침을 그러나 드라마는 역시 여성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틀어간다. 한결이란 왕자는 은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네가 뭔가를 포기하게 되는 건 싫어.” 이 말은 정확히 지금 현재의 워킹우먼들이 희구하는 꿈을 찍어낸다.
한결-은찬 라인과 동시에 움직이던 한성(이선균)-유주(채정안)라인은 애초부터 이 부분을 건드려왔다. 일과 사랑은 현대 여성들이 이루고 싶은 두 마리 토끼다. 현실은 그 두 토끼를 잡는 것을 그리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으며 거기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하므로 구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결이 은찬을 배려해서 하는 말들은, 수퍼우먼, 알파걸이 되길 강요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여성들의 로맨스를 제대로 찍어낸 이정아란 작가의 공력과 더불어, 여성성이 가득한 캐릭터들, 갖고 싶게 만드는 소품들과 집들, 찾아가서 꼭 마셔보고 싶은 카페의 커피들, 그런 것들을 맛깔 나게 배치하고 연출해내는 이윤정이란 여성 PD의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솜씨, 그 안에서 실컷 웃고 울면서 즐겁게 놀아준 연기자들.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을 꿈꾸게 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것이 한 때 환타지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최소한 꿈꾸게 만들었다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그만큼의 변화를 담보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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