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 민초들의 대변자 신세경의 일갈
“그럼 전 뭘해요? 산다는 건 뭔가 한다는 거잖아요. 근데 전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요. 길을 잃었다고요. 그럼 그냥 이렇게 죽어요? 뭐라도 해야 사는 거잖아요.” SBS 월화사극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이(신세경)는 정도전(김명민)에게 이렇게 토로한다. 그녀는 절망하고 있다. 아니 백성들이 그렇다. 자신들이 경작한 쌀의 무려 8할을 세금으로 뜯어가는 양반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9할로 세를 올렸다. 잦은 왜구들의 출몰로 백성들을 돌보기 위함이라는 미명하에.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민초들은 그들이 경작하는 땅을 고스란히 닮았다. 그들이 경작하는 땅이 그렇듯이 제 몸이 제 몸이 아니고 끊임없이 수탈당한다. 정도전은 절망에 빠진 분이에게 한 가지 희망을 전한다.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서 곡식을 경작해보라는 것. 하지만 이런 시도는 금세 들통이 나버린다. 한때는 성균관의 지식인이었으나 모진 고문 끝에 변절하고 이제는 앞장서 백성들을 수탈하는 홍인방(전노민)의 가노들이 들이닥쳐 민초들을 짓밟고 경작한 곡식을 빼앗는다. 그들은 말한다. “고려의 모든 땅은 다 나라 땅이야.”
분이와 살아남은 민초들을 구해준 이방원(유아인)은 굳이 관아에 가겠다는 그녀를 막아 세우며 결국 “너희들이 국법을 어겨 이 사단이 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자 누르고 눌렀던 분이의 분노가 폭발한다. 이방원의 뺨을 올려붙인 그녀는 “당신 귀족 따위가 뭘 알아?”하고 쏘아붙인 후 그녀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당해왔던 일들을 줄줄이 털어놓는다.
“원래 우리 땅에서 한 해에 4백석의 곡식이 나왔어. 국법? 국법에 의하면 40석은 나라에 40석은 향리에 바쳐. 그게 바로 법이야. 하지만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본 적이 없어. 내가 태어나던 해 우린 240석을 바쳤대.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320석을 바치고 그리고 얼마 전에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명의 귀족에게 자그마치 360석을 바쳤어. 남아있는 40섬으로 일 년을 살아야 되는 인원은 200명이 넘어. 그게 어떤 숫자인지 모르겠지? 하루에 밥 두 숟가락씩만 먹고 살아야 된단 이야기야.”
9할의 세금. 물론 이건 여말선초의 극단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도 분명 울림이 있다. 매달 월급 명세서를 보면 어디로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모른 채 각종 보험료가 숭덩 잘려진 쥐꼬리만한 월급이 들어오고 치솟는 전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리해서 은행 빚 얻어 산 집은 집값은 뚝뚝 떨어지는데 이자는 따박따박 나간다. 아이들을 점점 커가고, 몇 년도 안 되어 계속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여기 찔끔 저기 찔끔 보내는 학원비도 만만찮다.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육아와 교육이 마치 사치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룡이 나르샤>의 9할의 세금은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에게는 여러 명목으로 쪼개진 채 샐러리맨들을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직장이 온전한 샐러리맨들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지만 이제 사회에 나가야할 청춘들은 이미 대학교 때부터 지게 된 등록금 빚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육룡이 나르샤>의 백성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건 좀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그런 사치스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다. 삶이 삶이 아닌 현실에서의 생존.
“그래도 우린 살아야 됐고 그래서 이 황무지를 파고 또 팠어. 올해 추수를 하는 그 첫 수확이었고 근데 사람을 죽이고 곡식은 다 빼앗아 갔어. 그래서 난 3년 동안 개간하고 낱알 하나 먹지 못하고 간 죽은 언년이를 위해서라도 뭐라도 할 거야.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되는 거니까.” 분이의 일갈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그리고 9할의 세금이 상기시키는 것들은 무엇일까. <육룡이 나르샤>의 민초들을 보다보면 자꾸만 현재의 허리띠를 조이는 서민들과 샐러리맨들이 아른거린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어떤 것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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