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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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학교', 배우가 아니라도 배울만한 연기수업

D.H.Jung 2016. 2. 20.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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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학교>를 통해 장수원도 이원종도 찾는 것은

 

배우니까 배우세요.’ tvN <배우학교> 첫 회에 등장한 문구다. 배우는 그냥 연기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배움으로써 더 잘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일 게다. 발연기 논란을 겪었던 남태현이나 연기하는 것마다 로봇이라고 비아냥을 받다 아예 그게 캐릭터가 되어버린 장수원. 이제 원로급 배우지만 연기하는 즐거움을 잃었다는 이원종이나 어떻게 하면 웃길까만을 고민하다 연기의 진지함을 간과해온 유병재 등등. 이 학교에 온 출연자들은 저마다 연기에 대한 고충들을 안고 있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배우니까 배우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맞게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산을 오르며 발성연습을 하고 운동장에 있는 사물들을 몸으로 표현해보기도 하며 때로는 돗자리라는 단어 하나로 대화를 나눠보기도 한다. 또 결국은 몸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중요한 연기를 위해 발레리나 김주원이 찾아와 일러주는 발레 동작들을 연습하고 표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외적인 준비와 연습이 귀결되는 곳은 따로 있다. 그것은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때 박신양이 던졌던 질문. 즉 연기란 무엇이며 나는 왜 연기를 하려는가 라는 그 화두다. 즉 나를 알고 그 껍질을 깨치지 않으면 연기는 그저 흉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연기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물을 몸으로 연기하라는 박신양의 숙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장수원이었다. ‘로봇 연기라는 소리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그는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도 제대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못했다. 마음 속의 무언가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 노력해도 안되는 자신이 스스로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무심코 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놓여진 쓰레기봉지에 마음이 갔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봉지 같았다는 것.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상의 속으로 쏙 들어간 장수원은 마치 그 껍질을 벗고 나오려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을 연기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신을 표현하려 하지만 무언가가 그걸 막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 선생인 박신양은 장수원에게 그가 연기한 것이 쓰레기인지 쓰레기봉투인지를 물었다. 사실 그것들은 겉과 속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들이지만 장수원은 그것들을 하나로 혼동할 정도로 겉이 단단하게 속을 감싸고 있었던 것. 장수원은 아마도 이 연기수업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연기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일이 아니던가.

 

이원종은 노틀담의 꼽추의 꽈지모도를 연기했다. 에스메랄다를 데려와 놓고 욕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꽈지모도였다. 그 연기를 본 동료들은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었지만 박신양은 여기서도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그 연기가 너무 느리게 나왔다는 것. 또 에스메랄다라는 존재를 드러내는 연기가 아니라 꽈지모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연기였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원종은 박신양의 질문에 수긍했다. 연기는 연기하는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대상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박신양의 지적에 이원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도록 연기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치장들이 드러내야 할 것들을 오히려 가리고 자신을 강조하고 있었던 걸 그는 명확히 깨달았다.

 

<배우학교>가 보여주는 이런 장면들은 과연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나 중요한 이야기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배우가 아니라도 배울만한 것들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방법. 소통과 공감의 시대에 이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배우학교>가 배우가 아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