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의 소녀들과 <동주>의 청년들
영화는 이미 자본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는가 하는 점은 그 영화의 성패와 무관하지 않다. 극장에 얼마나 걸어주는가가 흥행의 관건이 되는 상황이다. 그러니 배급사가 투자사인 우리네 상황에서 투자규모가 큰 영화는 그만큼 극장에서 더 오래 많은 관을 내주게 된다. 그러니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설 자리 자체가 없다. 자본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영화 산업에 극명하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사진출처: 영화 <귀향>
그런데 여기 이런 자본 시스템을 거스른 두 영화가 있다. <귀향>과 <동주>다. <귀향>은 국민 7만5270명이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 12억을 모아 겨우 제작될 수 있었다. 물론 손숙 같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재능기부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 배급사에서 관심을 갖는 제작비 규모가 최소 20억 수준(홍보 마케팅비 포함)이라고 한다. 그러니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개봉관이 50개 정도로 얘기가 됐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개봉일 이 영화는 500여개가 넘는 개봉관을 확보했고 그 후로도 계속 개봉관 수를 늘려나갔다. 지난 7일 현재 267만 관객을 돌파했다. 작은 영화의 반란인 셈이다. 산업적인 논리로서는 도무지 벌어지기 힘든 일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공감대가 이런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위안부’ 문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그 공감대가 기억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
윤동주 시인의 청춘을 다룬 <동주>는 고작 5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작비로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유기적으로 움직여 빈틈없이 제작된 결과다. 5억 원의 규모이니 역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개봉 당일 개봉관 수는 370개 남짓.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관수도 점점 늘어갔다. 지난 2월24일에는 467개 스크린으로 확대됐다. 관객 수는 90만 명을 훌쩍 넘어 이제 곧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귀향>과 <동주>의 이 같은 선전에는 20대 청춘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왜 지금의 청춘들이 일제강점기라는 한참 이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들에 호응한 걸까. 그 키워드는 결국 ‘청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귀향>에서 무고하게 지옥으로 끌려간 소녀들과 <동주>에서 부끄러운 세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산화한 청춘들이 지금의 혹독한 취업 현실 속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을 공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귀향>과 <동주>를 보며 흘리는 청춘들의 눈물에는 그래서 당대의 소녀들과 청춘들의 아픈 역사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현실에 부대끼는 자신들의 아픔도 들어 있다.
너무나 작은 규모라서 설 자리조차 찾기 힘든 <귀향>과 <동주> 같은 작은 영화들은 그래서 지금의 청춘들을 그대로 닮아 있다. 모든 게 태생부터 결정되고 진짜 내용이 아니라 스펙에 의해 모든 미래의 성패까지 달리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청춘들이 처한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귀향>과 <동주>에 대한 청춘들의 호응은 당연해 보인다. 그 영화가 처한 현실 또한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향>과 <동주>의 이례적인 성공은 그래서 반가운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기적’이라 불리는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왜 이런 일들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지 못할까. 왜 작은 영화들은, 또 청춘들은 거대한 영화들과 기득권자들에 의해 항상 희생되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때로는 이런 현실도 긍정적으로 바꿔낼 수 있다는 희망도 이 두 영화의 사례가 보여주었다. 결국 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만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소중한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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