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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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막장 설 자리 없다, 명품드라마들이 바꾼 풍경

D.H.Jung 2016. 3. 1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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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 <육룡>, 수목 <태후>, 금토 <시그널>

 

드라마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월화에 SBS <육룡이 나르샤>가 있다면 수목에는 KBS <태양의 후예>가 있고 금토에는 tvN <시그널>이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나오는 얘기. 어떻게 일주일을 또 기다리느냐는 얘기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그만큼 완성도도 높고 몰입감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명품드라마들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들 명품드라마들은 확실히 과거의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육룡이 나르샤>는 사극이지만 이전의 사극이 아니며, <태양의 후예>는 멜로드라마지만 그저 그랬던 과거의 멜로가 아니다. <시그널>은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와 깊이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들이 화제성은 물론이고 시청률까지 가져가고 있다는 건 주목할 일이다.

 

과거의 경우 드라마는 막연하게 성공 공식 같은 것들이 있다고 여겨졌다. 이를 종합선물세트로 차려놓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률을 가져간 게 막장드라마들이다. 또한 지상파는 그 주시청층이 정해져 있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어도(어쩌면 그것이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이 시청률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믿어져 왔다. 그래서 드라마들은 한 마디로 적당(?)히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태양의 후예>처럼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담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가 6회만에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다는 것이 그렇고, <시그널>처럼 멜로도 없는 본격 장르물(그것도 형사물은 시청률에서 안 된다는 금기를 깨고)이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를 가져갔다는 것도 그렇다. 무려 50부작에 이르는 사극이지만 한 회 한 회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육룡이 나르샤>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확언하긴 어렵지만 추정할 수 있는 건 드라마의 시청층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40대 드라마 시청층은 30대부터 우리네 드라마와 미드, 일드를 함께 즐기며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갈증을 키워왔던 세대다. 이들은 기성의 드라마 주시청층이 좋아하던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 복수극을 담은 막장드라마 같은 공식적인 드라마도 보지만 동시에 본격 장르물에 대한 선호도도 높은 시청층이다. 그 누구보다 막장드라마를 개탄해하고 완성도 높은 명품드라마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온 시청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에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막장드라마 논란을 일으킨 MBC <내 딸 금사월>에 관계자 징계와 주의라는 법정 제재 같은 이례적인 조치를 내린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미 막장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는 것을 방심위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청률이면 얼토당토않은 개연성에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던 막장드라마는 조금씩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의 새로운 판도가 열리고 있다. 변화의 시점에 그 헤게모니를 누가 잡는가는 방송사들의 사활을 건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전쟁의 방식이 과거처럼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막장드라마 경쟁 같은 퇴행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제 아무리 시청률을 가져간다고 해도 대중들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바 있고, 또 새로움을 요구하는 시청층을 잡지 않으면 광고 매출 같은 직접적인 수익에도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한 때는 주중에까지 침투해 들어왔던 막장드라마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었지만 이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명품드라마들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풍경이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