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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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이성민이라 가능한 '기억'의 복잡한 감정선 그 묘미

D.H.Jung 2016. 3. 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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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이성민만 봐도 빠져드는 까닭

 

역시 이성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드라마다. 새로 시작한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인물의 감정선이 드라마에 얼마나 몰입감을 주는가를 잘 보여줬다. 사실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는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심지어 기억상실이란 소재는 과거 드라마에서 툭하면 나오던 설정이 아닌가.

 


'기억(사진출처:tvN)'

하지만 <기억>은 기억상실이란 소재를 그저 극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대신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어가게 되면서 차츰 삶의 본질을 찾게 될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코 가벼울 수 없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진지한 삶에 대한 질문이 담길 드라마다.

 

드라마는 박태석(이성민)이 방송 녹화 도중 전화를 받고는 지금 농담 하는거야?”하고 소리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짜고짜 치고 들어오는 이 드라마는 한 시간 동안 그에게서 벌어졌던 며칠 전의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담아낸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다. 하지만 그 성공은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가진 자들을 비호하기 위해 심지어 할 수 있는 비열한 짓까지 모두 동원해서 얻어낸 성공이다. 그는 의료사고를 덮으려는 병원 측을 변호하기 위해 내부고발을 한 의사의 자식이 과거 유학 중 마약을 했었다는 사실을 약점으로 잡아 거래를 하는 이른바 속물변호사다.

 

물론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주치의인 재민(최덕문)이 그 사실을 알고 그를 포장마차에서 나쁜 놈이라고 욕할 때, 본래 태석이라는 인물이 속물은 아니었다는 게 슬쩍 드러난다. 그는 변호사로서 별로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었고 심지어 아들을 뺑소니로 잃고는 그 충격으로 이혼까지 하게 된 인물이었다. 결국 바닥까지 내려왔던 그는 어떻게든 성공하고 힘을 갖기 위해 속물이 되는 것조차 받아들였던 인물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을 한 의사가 말했듯, “인생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단 며칠 사이에 로펌의 최고 승률을 달리는 변호사에서 알츠하이머를 앓고 기억을 잃어가는 중년 남자로 추락한다. 마침 그가 협박과 거래를 통해 무마시킨 의료사고 사건의 내부고발자였던 의사가 자살하게 됨으로써 태석은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속물변호사라는 자책감, 그러면서도 성공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너무나 능숙하게 일처리를 해내는 자신에 대한 자신감, 아이의 죽음과 이혼이라는 깊은 상처, 재혼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잊지 못하는 것 같은 옛 아내에 대한 감정, 재벌가 사람들에 빌붙어 살고 있지만 거기서도 슬쩍슬쩍 느껴지는 어떤 구토감 등등. 태석이란 인물은 굉장히 복잡한 감정선을 갖고 있다.

 

<기억>은 이 태석이란 인물이 계기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 동기가 되는 여러 감정선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놀라운 건 이 복잡해 보이는 감정선이 하나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들이 뒤얽혀 있는 태석이란 인물의 여러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이 그리 복잡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역시 이성민의 믿음직한 연기력 덕분이다. 그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드라마는 그만한 몰입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갖게 되면서 자신의 실체를 알게 된 태석은 어떤 삶의 변화를 겪게 될까. 속물이지만 성공한 변호사라는 위치가 주는 달콤함에서 벗어나 자신이 본래 서려 했던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그것은 추락인가 아니면 진정한 행복을 위한 길인가. 태석의 행보가 궁금하다. 그 행보를 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 이성민의 연기를 통해 드러날 그 감정변화를 들여다보는 맛이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끌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