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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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보면서 자꾸 세월호가 떠오르는 까닭

D.H.Jung 2016. 4. 10.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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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아빠 난 오늘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 같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까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학교 폭력으로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했던 정우(남다름)는 아버지 태석(이성민)에게 그렇게 말한다. 태석이 자신의 억울함을 대변해 이사장과 당당히 맞섬으로써 정우는 죽음처럼 앞이 캄캄했던 학교생활에 빛이 들어오는 걸 느꼈을 것이다.

 


'기억(사진출처:tvN)'

당하는 친구를 도우려 했다가 오히려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버린 정우. 이사장의 아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에 선생님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심지어 그 도움을 주었던 친구마저 자신이 따돌림의 대상이 될까봐 정우에게서 등을 돌렸던 현실. 권력을 이용해 자기 아들만을 두둔하며 정우를 오히려 가해자로 몰아버리는 이사장. 이사장은 정우에게 구제불능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태석이 말하듯 진짜 구제불능은 정우를 둘러싸고 그 폭력을 방치한 어른들이었다.

 

정우가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대목을 들어 그날을 평생 기억할 거라고 말하자, 태석은 속으로 이렇게 정우에게 말한다. ‘아빠는 언젠간 오늘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거야. 네가 처음으로 아빠를 멋지다고 말해줬던 것도 주인공이 레드한테 했다는 그 말도 전부 잊게 될 거야.’ tvN 금토드라마 <기억>은 제목처럼 우리네 삶에 있어서 기억이 갖고 있는 의미와 가치들을 되돌아본다. 정우와 태석이 기억이라는 화두를 갖고 나누는 이 이야기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이고 남겨야 할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되는 상황을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렇게 모든 걸 바꿔버리는 당사자가 권력을 가진 어른이라는 걸 보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심지어 그 고통 때문에 아이를 죽음으로까지 몰아세우는 현실은 도대체 얼마나 잘못된 것일까.

 

태석은 정우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이사장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문구가 적힌 상담실 앞에 걸려 있는 판넬을 들고 와 이렇게 말한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사람한테 당신이 왜 죽게 됐는지 생각해보라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그는 이런 학교에서 배우고 어른이 된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라고 말한다.

 

<기억>이 어른과 아이의 관계를 기억의 문제로서 다루는 건 태석과 정우만이 아니다. 태석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태석의 아버지는 단칸셋방 보증금에 자식 등록금까지 전부다 챙겨 도망쳤다. 그것 때문에 태석과 그의 어머니는 노숙에 여인숙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이제 나이 들어 집으로 온 아버지를 그래서 태석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은 타인보다도 못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기억>은 그래서 태석의 아버지와 태석 그리고 정우라는 3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근대사를 압축해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가부장적 세계에서 살아온 윗세대와 그로 인해 갖게 된 가난을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그 다음 세대의 가장.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판정을 받고 가족을 되돌아보는 아버지 때문에 겨우 아버지에 대한 잊지 못할 좋은 기억을 갖게 된 아이. 물론 이 3대의 이야기가 우리네 근대사를 모두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기억으로 막연히 점철된 세대 간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른들이 했던 일들로 인해 그걸 보고 기억하는 아이의 현실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불의는 그 자체로 아이에게 지옥을 만든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느 날 어른이 되어 아버지를 부정할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황진미 칼럼니스트가 <기억>에 대한 칼럼을 통해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이 드라마는 여러모로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무고하게 떠나버린 아이들. 그리고 이 참사 앞에서 어른들의 어떤 결정과 행동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인가 아니면 나쁜 기억인가. 진상조차 덮어버리려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바닷물 위에 발이 잠긴 채 절망적으로 서 있는 <기억>의 포스터는 그래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