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욱씨남정기>, 대중은 무엇에 열광했을까
사실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2013년에 쏟아져 나와 이슈화되었다. 땅콩 회항 사건이 한참 전이지만 당시에는 이른바 ‘라면 상무’와 ‘빵 회장’ 그리고 ‘조폭우유’가 있었다. 대중들이 ‘갑질’에 대한 문제들에 민감해 할 때 <직장의 신>의 미스 김은 통쾌한 ‘을의 반란’을 일찍이 보여준 바 있고, <그것이 알고싶다>는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갑질 세상을 낱낱이 폭로한 바 있다.
'욱씨남정기(사진출처:JTBC)'
그리고 3년이 지난 2016년. <시그널>의 과거 인물인 이재한(조진웅) 형사가 현재 인물인 박해영(이제훈) 경위에게 그토록 세월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알고 절망했던 것처럼,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욱씨남정기>는 바로 이 정서를 빙빙 돌지 않고 정공법으로 건드려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한 드라마다.
사실 이 드라마가 이 정도까지 신선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소소한 직장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의 신>의 미스 김 캐릭터 이후 <욱씨남정기>의 옥다정(이요원)만큼 시원한 캐릭터는 없었다. 갑질하는 직장 상사에게 물 싸대기를 날리고 사표를 던지고 나와 을의 입장에서 좀 더 당당하게 갑과 대적하는 인물로서 옥다정은 단박에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하청업체로서 늘 황급화학의 을이었던 러블리 코스메틱이 자체 브랜드를 런칭하고 성공해가는 과정은 시청자들에게는 현실에서 좀체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선사했다. 황금화학의 김상무(손종학)는 급기야 기업사냥꾼까지 손잡고 러블리 코스메틱을 인수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욱씨남정기>는 직장에서 드러나는 갑과 을의 관계들을 디테일한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그려냈다는 점에서 <미생>과 유사한 지점을 갖는다. <미생>이 이제 갓 입사한 인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뤄졌다면 <욱씨남정기>는 하청업체에서 벗어나 버젓한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는 회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하지만 <욱씨남정기>와 <미생>은 확연히 다른 지점이 있었다. 그것은 <미생>이 좀체 웃기 힘든 비극을 기조로 깔아놓았다면 <욱씨남정기>는 코미디를 장르로 삼아 훨씬 더 경쾌하게 드라마를 즐길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미생> 나왔던 2014년과 <욱씨남정기>가 방영된 2016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2014년만 해도 당대 현실에 대한 공감만으로 충분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이제 2016년에는 현실 공감을 넘어서 일종의 판타지가 있어야 드라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현실이 그만큼 더 어려워져 똑같은 현실을 드라마에서조차 보기 힘겨워진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했다는 건 아니다. <욱씨남정기>는 남정기(윤상현) 과장이라는 현실을 바탕으로 세워진 판타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늘 자신을 희생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남정기 과장은 그래서 늘 당하며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옥다정이라는 인물이 하나의 판타지로 들어서게 되는 것. 이 남정기와 옥다정, 현실과 판타지의 균형 감각이 <욱씨남정기>에 대중들이 열광한 가장 큰 이유다.
물론 이토록 혹독한 갑을 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에 대중들이 열광한다는 건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 얼마나 힘겨우면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숨통을 트려 했던 걸까. 하지만 <욱씨남정기>의 남정기 과장이 옥다정을 통해 조금씩 보여준 ‘을의 각성’은 저 <미생>의 장그래나 <송곳>의 이수인의 현실 인식만큼 소중한 면이 있다. 어느덧 종영이지만 <직장의 신>부터 <미생>, <송곳> 그리고 <욱씨남정기>를 잇는 샐러리맨들의 현실공감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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