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미취업자는 비전문직 이하인가
어떤 범주를 규정하는 용어는 때론 필요 없는 구획을 만들어 범주 바깥에 위치한 것들을 소외시킨다. 드라마에 있어서 소위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가 그렇다. 아마도 이 용어는 사랑타령 일색이던 멜로 드라마에 새롭게 등장한 드라마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다루면서 비롯된 용어가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당시의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는 분명 유용했다. 천편일률적인 짝짓기 드라마들 속에서 직업의 세계는 그 구태의연함을 깰 수 있는 유일한 방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용어는 아직도 유용할까.
그렇게 해서 나온 소위 전문직 드라마들의 전문직을 보면 의사, 변호사 정도의 직업군을 꼽을 수 있을 정도다. 올 초에 여기에 다시 불을 붙인 직업도 역시 의사(하얀거탑, 외과의사 봉달희)였다. 이후 나왔던 ‘히트’, ‘에어시티’ 그리고 ‘개와 늑대의 시간’ 이 각각 형사와 공항직원, 그리고 국정원을 직업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것을 전문직 드라마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들이 직업의 디테일을 살리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액션, 스릴러 같은 장르적 재미에 치중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는 다분히 소재주의로 오인될 소지를 갖고 있다. 무슨 무슨 직업을 다룬 드라마라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본래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가 가진 요구는 특정 직업을 다뤄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구태의연하게 짜 맞춘 공식처럼 굴러가는 삼각 사각구도의 사랑타령에서 벗어나 드라마 속 인물이나 스토리의 디테일에 천착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니 전문직만을 내세우면서 정작 디테일을 살리지 못한 ‘에어시티’나 ‘로비스트’같은 참극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사랑타령의 혐오를 드러내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용어는 멜로 드라마의 가치를 폄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즉 전문직을 다루는 드라마 속에 멜로가 들어가면 늘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이것이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라는 의심을 받기 때문이며, 여기서 멜로는 암묵적으로 고리타분하고 좋지 않은 어떤 것으로 상정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을 두고볼 때,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고 모두 일만 하고 있는 것이 정말 리얼하고 디테일에 충실한 일일까. 우리는 이제 드라마의 발을 묶어두고 있는 편 가르기식 용어가 가진 족쇄를 풀어낼 필요가 있다.
전문직과 그렇지 않은 일상적 직업군을 가르지 않고, 멜로와 비멜로를 가르지 않는 상황에서 디테일이 잘 그려졌는가 아닌가를 잣대로 드라마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말하길 전문직 드라마에서 의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전문직으로서 조명을 받을 때, 흔히 멜로 드라마가 담고 있는 주부들이나 청춘드라마가 보여주는 미취업자들은 비전문직 이하로 폄하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수많은 주부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있지만 정작 주부의 디테일을 살리는 드라마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모든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직업은 다 전문직이며(심지어 그것이 ‘메리대구 공방전’의 백수나 ‘내 남자의 여자’의 주부라도), 그 직업이 무엇이든 사람 사는 곳에는 멜로가 피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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