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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세상에서', 원미경이 탁월한 연기로 담아낸 따뜻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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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원미경에게 슬픔 뒤 인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1996년 MBC에서 방영되어 큰 화제가 됐던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4부작으로 리메이크했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거나 혹은 과거에 봤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시청자들이라도 제목만 들으면 대충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감지할 수 있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다가 말기암 판정을 받게 된 주부의 이야기. 눈물은 이미 예고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우리가 뻔하게 봐왔던 말기암 판정 주인공을 통한 ‘짜내는 눈물’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드라마는 이 절망적 상황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들을 극도로 절제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 사실을 먼저 알게 된 남편 정철(유동근)의 캐릭터가 그렇다. 평상시 별로 말도 없고 누가 물어도 대꾸도 잘 하지 않은 채 표정도 거의 없는 캐릭터다. 물론 절망적인 아내의 말기암 판정을 듣고 이를 부정하고 괜스레 화를 내기도 하지만 그는 이유를 토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말기암으로 더 이상 가망이 없는 당사자인 인희(원미경)는 몸이 고장 났지만 좀체 자신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늘 그래왔듯 자신보다는 가족이 먼저고 그래서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가는 날에도 집에 혼자 두고 가는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김영옥)의 기저귀 가는 일을 마음에 걸려한다. 여행 계를 계속 친구들과 해왔지만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은 없고, 말년에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조용히 지낼 집이 마무리 되어가는 것에 여전히 소녀처럼 들떠한다. 

그러면서 망나니에 경마 도박에 빠져버린 동생 근덕(유재명)의 아내인 양순(염혜란)의 삶을 더 걱정한다. 그 집을 찾아가 늘 그래왔듯 돈 봉투를 건네는 인희는 그런 망나니 동생과 그래도 지지고 볶으며 살아주는 양순을 미더워한다. 힘겨운 삶 속에서 거칠어진 양순의 말과 행동들을 보면서도 그에게서 어떤 따뜻함 같은 걸 느낀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말기암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소재로 담으면서도 거기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인희라는 한 인물이 가진 따뜻함에 더 주목한다. 남편 챙기고 자식들 보듬으며 또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까지 부양하는 그 삶이 이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인희의 삶처럼 여겨져 왔던 것이, 말기암이라는 상황을 던져놓고 보니 사실은 굉장한 삶이었다는 걸 발견하는 그런 시선.

그래서 인희를 통해 한 인간의 숭고함 같은 걸 발견하는 이 드라마는 쉽게 틀에 박힌 말기암 신파의 길을 걷지 않는다. 대신 이 사람이 했던 평상시의 그 행동들이나 선택들, 그리고 말들과 표정들이 남기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찌 보면 돌보는 게 업이 되어 떠나면서도 자신이 돌보던 이들을 걱정하는 이의 따뜻함을. 따라서 이 이별은 슬프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갖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의미 같은 걸 드러내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배우들이다. 1996년 방영됐던 드라마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었던 김영옥을 비롯해 원미경, 유동근의 연기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이 작품에 생명을 더해준다. 특히 이런 따뜻한 슬픔을 고스란히 연기로 녹여내는 원미경은 마치 인희라는 인물 자체가 된 듯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소녀 같기도 한 이 주부를 연기해내는 원미경에게서는 슬픔 뒤에 느껴지는 인간의 온기가 있다. 짧은 4부작이지만 아마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