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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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남녀' 정재영이 검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들

D.H.Jung 2018. 6. 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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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법남녀’, 검시된 사체가 말하는 우리 사회 현실들

전교 1등 하던 고등학생이 사체로 발견되었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것. 자살인가 타살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법의관 백범(정재영)이 사체를 검시한다.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팀은 엘리베이터 CCTV에 잡힌 자살 몇 시간 전 옥상에 함께 올라간 4명의 아이들을 의심하지만, 백범은 증거가 나올 때까지 함부로 “소설 쓰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MBC 월화드라마 <검법남녀>가 다룬 한 고등학생의 죽음은 법의학을 통해 그 원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미드 CSI류의 장르물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법남녀>는 토착적인 우리네 정서의 느낌을 준다. 살벌한 살인사건이나 치밀한 연쇄살인 같은 걸 밝혀내는 미드와는 달리 훨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질 법한 사건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고등학생의 죽음은 애초에 타살이 아닌가 의심되었지만, 사체 속에 남겨진 음식물의 소화시간을 분석해냄으로써 사망시간에 그 아이가 혼자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결국 자살로 판정된 것. 하지만 백범의 라이벌이자 죽은 아이의 아버지인 마도남(송영규)은 이를 인정할 수가 없다. 사망 당일 아이가 돈을 아껴 주문한 프라모델이 도착한 사실 때문이다. 자살할 정도로 비관했다면 그런 주문을 할 리가 만무라는 것. 

백범 역시 타살은 아니지만 학생의 죽음에 남는 의문점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찾아낸 사인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각성제 과용에 의한 환각 증상이었다. 검시된 아이의 몸에서 갖가지 약 성분들이 과다검출된 것. 전교 1등을 유지하기 위해 시험기간에 잠을 깨는 각성제를 과다 복용한 학생은 “오늘은 자라”는 엄마의 말을 환각과 환청으로 들으며 아파트 옥상에서 침대에 뛰어들 듯 뛰어내렸다. 

법의학은 ‘사체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그런데 <검법남녀>는 그 사체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들려준다. 결국 이 고등학생을 죽음으로 내몬 건 무엇일까. 그 사체 가득 채워져 있던 독 같은 각성제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그건 입시경쟁이 학생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끄는 현실이다. 심지어 그 부모가 ‘공부 잘하는 약’이라며 불법 유입된 약을 사다 주는 현실이라니.

그래서 <검법남녀>가 다루는 사건과 그 사건에 등장하는 사체들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단면들이 드러난다. 첫 번째 사건으로 다뤄진 한 여성의 사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가정폭력’의 비극을 담았다. 남편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오던 한 여성의 사망. 결국 그 죽음은 이 여성이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한 자작극으로 판명난다. 

고인의 냉동정자를 통해 임신해 아이를 낳았다며 그 유산을 주장하는 한 여인의 사건은, 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가족, 친족 간의 갈등을 담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던 이야기는 결국 그 여인이 유산을 노리고 벌인 범죄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씁쓸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고인의 유산을 두고 종종 벌어지곤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사체를 검시하고 그걸 통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법의학이라는 소재가 가진 힘이 남다르다는 점은 <검법남녀>가 애초의 예상과 달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낳은 힘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 만이었다면 어딘가 부족했을 게다. <검법남녀>는 백범이라는 법의관이 검시하는 사체에 우리네 현실의 문제들을 담았다. 이 드라마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미드 장르물과 달리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다.(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