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동네 한 바퀴' 김영철이 눈물 글썽이자 내 마음도 짠해졌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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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김영철이 눈물 글썽이자 내 마음도 짠해졌다

D.H.Jung 2018. 11. 2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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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들여다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강변북로를 그토록 많이 지나갔지만 거기 저런 멋진 정자가 있었다는 걸 어째서 잘 몰랐을까.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찾아간 망원동, 성산동의 강변동네에서 발견한 ‘희우정(喜雨亭)’. 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강변북로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그 정자의 이름과 어우러지며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정자에서 비 내리는 한강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즐거움이 묻어나는 그 곳. 

아마도 이 장면은 정규 편성되어 첫 방송을 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전국 동네들을 걸으며 담으려는 정경이 아닐까 싶다. 그저 지나칠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동네의 소소한 정감들을 잠시 멈춰서 들여다보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지는 동네의 풍경들.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더해주는 따뜻한 가슴이 훈훈함을 만드는 동네의 진짜 얼굴. 

그 따뜻함을 만드는 건 다름 아닌 그 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세월이 묻어난 손때와 온기다. 최근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는 망원동에서 김영철이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간 카페에서는 무려 16년 간 그 자리를 지켜온 부부의 손때와 온기가 가득하다. 로스팅 기계를 뜯어보고 최적의 커피콩을 볶아낼 수 있는 기계를 직접 만든 아저씨의 고집이 느껴지고, 그걸 힘들어도 묵묵히 지지해온 아주머니의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런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그저 입으로만 전해지는 맛뿐이 아닐 게다. 세월의 공력이 묻어난 손맛과 마음의 맛도 더해질 테니.

축축한 공기를 마시면 우리도 모르게 느껴지는 따끈한 국물에 대한 허기. 김영철이 찾아간 손칼국수집은 국물도 마시기 전 가슴부터 따뜻하게 해주는 할머니의 정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아직 80대라고 농을 하시는 92세 노모와 그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그 손칼국수집은 2,900원짜리 칼국수에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세월의 정성을 담아내놓는다. 혼자 손칼국수를 마주하다 어머니가 떠오른 김영철이 노모와 함께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별다른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아도 느껴지는 엄마와 아들 같은 훈훈함이 묻어난다. 

경남 함양의 집으로 가야한다는 노모의 습관적인 말 속에서 마치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적인 그리움이 뭉클하게 다가오고, 떠나는 김영철을 못내 아쉬워하며 문 앞까지 나와 손을 꼭 잡고 배웅하는 노모에게서 마치 고향을 떠나보내는 아들을 배웅하는 엄마들의 흔하지만 짠해지는 감동이 묻어난다. 어느새 촉촉해진 김영철의 눈가에도 어머니를 바라보는 듯한 애틋함이 피어오른다. 

망원동에서 성산동 쪽으로 넘어와 만나게 된 문화비축기지는 한 때 석유파동으로 석유를 비축하기 위해 지어졌던 탱크들이 이제는 문화로 채워지고 있는 풍경을 마주한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처럼 “깜깜한 것이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그 탱크 속에서는 찾은 이들이 소원을 메아리로 전하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벌어진다.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과, 행복을 기원하는 가족들. 문화비축기지가 이제 비축하고 있는 건 그런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어쩌면 우리가 흔하게 걸어왔지만 멈춰서 들여다보지 않아 지나쳤던 사람들의 흔적과 마음들을 차곡차곡 비축해주는 프로그램일 게다. 김영철이라는 따뜻한 가슴이 더해지자 따뜻해지는 동네의 정경들. 그것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치는 분명해진다. 도시의 삶이 헛헛하고 차갑게 다가올 때, 그저 들여다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