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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역시 김은희, '킹덤'이 배고픈 조선 좀비에 담은 민초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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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이 열어놓은 조선판 좀비세상, 시즌1은 시작일 뿐

(본문 중 드라마 내용에 대한 누설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시청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죽은 왕을 되살리려는 욕망에서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다는 생사초. 그걸로 살아난 왕은 그러나 괴물이 되어버린다. 죽었지만 살아난 왕. 그리고 살아났지만 죽은 왕. <킹덤>의 전제가 되는 이 설정은 그 자체가 상징적이다. 한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자가 살아있어도 산 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나라 전체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가 하는 건 굳이 조선이 아니어도, 또 좀비라는 특이한 존재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근현대사를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좀비는 ‘죽었지만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살아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킹덤>이 죽은 왕을 통해 담은 좀비의 의미는 후자에 가깝다. 나라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존재가 ‘죽은 거나 마찬가지’로 전락했을 때, 그 비어있는 권력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들이 창궐한다. 혜원 조씨의 수장으로 조선을 쥐락펴락하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의 욕망이 그것이다. 그는 죽은 왕을 살려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더 이어가려 한다. 그의 딸인 중전(김혜준)이 가진 복중태아를 통해 왕좌를 이어가려는 것. 조학주는 ‘비선실세’로 왕과 중전을 대신해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쥔다.

흥미로운 건 괴물이 되어버린 왕으로부터 ‘좀비로 변하는 역병’이 민초들에게 퍼져나가는 그 과정이다. 죽은 왕을 살려낸 의원과 함께 갔던 소년이 습격을 받아 죽음을 맞이하고, 의원이 동래 지휼현으로 그 시신을 데려오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병자들에게 의문의 남자 영신(김성규)이 그 시신을 요리해 먹이고, 이로써 좀비로 변하는 역병이 창궐하는 것. 역병의 과정은 그래서 왕의 부재와, 그로인해 굶주리는 백성들이라는 ‘통치의 문제’를 그대로 담아낸다. 결과는 이렇게 탄생한 좀비들이 마치 세상을 뒤집기라도 할 것처럼 쏟아져 나와 피와 살점이 튀기는 아비규환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김은희 작가가 <킹덤>을 ‘배고픔’에 대한 이야기로 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는 가진 자들이 배불리 먹는 장면들과 배고픈 민초들을 대비해 보여준다. 이를테면 백성들이 먹을 게 없어 초근목피는 물론 벌레까지 다 잡아먹는 상황 속에서도 동래부사 조범팔(전석호)이 주연을 벌이고 떨어뜨린 음식을 버리는 장면이 그렇다. 이러한 대비효과 때문에, 지휼현에서 나온 시체들이 어둑어둑해지자 하나둘 깨어나 동래부사 조범팔과 그 무리들을 공격하는 장면은, 수탈하는 저들과 그래서 배고픈 민초들의 대결처럼 읽히는 면이 있다.

<킹덤>은 물론 조선시대라는 배경에 역병을 좀비로 해석했다는 새로움이 더해져 신선함을 주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운 건 그 ‘배고픈 좀비’라는 존재들을 민초로 해석하면서 권력과 정치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극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왕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왕이나, 그래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비선실세 신하의 이야기는 그리 새롭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를 ‘좀비’라는 존재를 통해 정치 권력의 문제로 풀어낸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보면 사극이 상대적으로 덜 익숙한 해외팬들에게 더 큰 흥미를 줄 수 있는 지점이다.

<킹덤> 시즌1은 김은희 작가의 야심이 엿보이기도 한다. 사실 6회로 마무리되는 시즌1은 이 거대하게 펼쳐질 수 있는 이야기의 겨우 도입부분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즌1은 무언가 왕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직감한 왕세자 이창(주지훈)이 의원을 찾아 동래 지휼현까지 갔다가 역병의 실체를 보게 되고, 그의 호위무사인 무영(김상호)과 함께 이 병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는 그 모험담을 담고 있다. 그는 조학주에 의해 역모로 몰려 금군과도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즌2가 더욱 궁금해지는 건 시즌1이 깔아놓은 인물들이 어딘가 비밀스럽고 저마다의 욕망들을 숨기고 있어 향후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왕세자 이창은 조학주처럼 백성을 절대 버리지는 않는다며 그들을 위해 위험한 상황 속에도 뛰어들지만, 그건 어찌 보면 조학주에 대한 철저한 증오에서 비롯되는 행동처럼도 보인다. 그는 실제로 왕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역모의 연판장에 스스로 이름을 적어 넣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역시 자기만의 욕망을 숨기고 있다.

조학주는 딸 중전을 통해 비선실세의 욕망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조학주와 중전이 서로를 돕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권력의 왕좌를 두고 조학주와 중전 또한 팽팽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것. 또 이창이 의탁한 상주의 안현대감(허준호)은 왕세자의 어린 시절 스승으로 그를 돕는 충신처럼 보이지만, 의문의 인물 영신이 살던 마을이 수몰된 일과 어떤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어딘가 제2의 조학주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시즌1에 깔아놓은 인물들은 향후 저마다의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이야기의 변주를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시즌1은 시작일 뿐이다. 김은희 작가가 <킹덤>으로 열어놓은 조선판 좀비세상은 앞으로도 여러 시즌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가 적지 않다고 보인다. 결국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욕망과 무고한 민초들의 배고픔이 좀비라는 존재로 창궐하여 부딪치는 이야기이고, 좀비들보다 더 좀비가 되어가는 욕망에 눈 먼 이들의 이야기가 결국 이 거대한 <킹덤>이라는 제국이 그려내려는 세계가 아닐까. 도입 부분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세계가 기대되고 궁금해지는 이유다.(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