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다룬 ‘녹두꽃’, 어째서 민초의 역사 외면 받았나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 날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된 건, 이 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소외되어 왔던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건 지난해였다. 무려 125년 만에 기념일로 제정된 것. 무엇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평가를 이토록 늦게 만들었던 걸까.
이 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그 황토현 전투를 다뤘다.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의 탄생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재조명의 움직임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침 그 기념일인데다,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 5월 11일에 맞춰 그 전투를 재연해낸 건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녹두꽃>은 백이강(조정석), 백이현(윤시윤) 이복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학농민군 의병대와 관에 의해 동원된 향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복형제인데다 적자와 서자로 나뉘어 있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게 자라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형제 그 이상이다. 탐관오리에 붙어 악랄한 이방으로 치부해온 백가(박혁권)는 서자인 백이강을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거시기’로 키우지만, 적자인 백이현은 유학까지 보낸 도련님으로 키운다. 하지만 백이현은 부친의 악행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고, 백이강을 형님으로 대해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녹두꽃>이 그리는 건 그런 드러난 인물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백이강이나 백이현 같은 민초들의 삶이다. 그들은 의병과 향병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투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고 챙기려 한다. 결국 향병들도 관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징발된 무고한 민초들이다. 그래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향병들은 죽이지 말라고 명을 내린다. 그들은 관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세워지고, 도망치려는 자들은 저들의 칼날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황토현 전투 속에서도 의병들과 향병들이 모두 관군에 의해 핍박받는 상황을 그려낸다. 백이현이 이 전투 속에서 처음으로 죽이게 되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같은 향병이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대신 이 와중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탐관오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정당성을 드러낸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별동대 대원들이 적의 진지로 숨어들어가고 의병대가 습격을 해 시작된 것이 바로 황토현 전투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극들이 만들어졌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지난해에 비로소 기념일이 제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레드 콤플렉스는 동학농민혁명을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됐다.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극의 소재로 쏟아져 나왔지만, 민초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건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차츰 역사 바깥을 탐색하던 사극들이 민초들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대장금>에서부터 <추노>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으로 그려낸 민초들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녹두꽃>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진짜 민초들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촛불 혁명 같은 민초들의 역사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어서다. 기념일에 즈음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한 건 이런 변화된 현재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념일에 <녹두꽃>의 황토현 전투 재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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