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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아름다운' 추자현처럼 우리도 악의 꼬드김 떨쳐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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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의 놀라운 통찰력, 악은 어떻게 탄생하나

 

아이는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 대한 보고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왜 하필 선호(남다름)가 읽는 책으로 이 책을 선택했을까.

 

제목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결코 아름다움을 찾기 힘든 세상이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한 곳에 언제든 도사리고 있는 악 때문이다. 선호가 학교 옥상에서 추락하고, 그 추락이 다름 아닌 준석(서동현)과의 다툼 때문에 벌어졌으며, 그 현장에 있던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가 그 추락을 자살로 보이게 꾸민 사건은 이 드라마가 보여준 첫 번째 악의 탄생 과정이다.

 

과연 서은주는 자신이 그런 게 아니라는 아들 준석의 말을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믿고 싶었던 것일까. 사고였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자살로 꾸며낸 그 선택은 그러나 서은주를 지옥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점점 아들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됐고, 심지어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행동하는 아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준석은 저 아이히만처럼 너무나 평범한 얼굴의 악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추락한 아들이 자살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는 선호의 부모 박무진(박희순)과 강인하(추자현)는 그 사건이 있기 전 아들이 만나러 갔던 다희(박지후)에게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만 그 부모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선호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며, 선호가 다희를 성폭행했다는 것. 하지만 박무진과 강인하는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토록 착한 선호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 없다는 것이다.

 

강인하는 믿을 수 없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아들을 위해 사건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진실을 알아내려는 남편 박무진에게 이대로 덮자고 애원한다. 하지만 박무진은 그렇게 하면 “우리가 저들과 다른 게 뭐냐”고 되묻는다. 원하는 진실만을 찾는 게 아니라, 그것이 원하는 진실이 아니라도 밝혀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린 강인하는 자신 또한 그 ‘평범한 악’에 빠질 뻔 했었다는 걸 깨닫는다. 자식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진실을 외면하려 했다는 것. 만일 그랬다면 그 또한 서은주가 빠져버린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강인하는 남편에게 끝까지 진실을 향해 나아가자고 다짐하고 결국 그 시간에 선호가 도서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안심의 눈물을 흘린다.

 

<아름다운 세상>은 한 아이의 추락과 함께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이야기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점점 확장되어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평범한 악’을 통찰해내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악이 굉장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것. 그저 ‘자식을 위한다’는 그 명목으로 저지르는 것들이 모두를 망치고 지옥에 빠뜨리는 악이 아닌가. 겉보기에 평범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그 평범 속에 악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프지만 진실을 피하지 않으려는 그 노력만이 진정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