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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이혼해도 괜찮아.. '한번 다녀왔습니다'가 제시한 색다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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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다녀왔습니다’, 가족 해체 시대에 더 필요한 가족드라마

 

“근데 지나고 보면 네가 그렇게 고집부린 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 중학교 때 느닷없이 전학 보내달라고 그럴 때도 그랬고 고3 때 알바 한다고 설칠 때도 그랬고. 그래. 이번에도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아버진 알아 근데 이거 하나만 꼭 알아둬. 다 지나가. 시간 지나면 별일도 별일 아니게 돼. 정말야. 인생 길다. 살다보면 웃을 일도 생기고 울 일도 생기고. 뭐 울 일 좀 생기면 어때. 네 옆에는 엄마 아빠 다 있는데 언니 오빠 있고 네 편이 이렇게 많은데.”

 

KBS 주말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송영달(천호진)은 결혼식날 파혼하겠다며 돌아온 막내 송다희(이초희)에게 그렇게 위로한다. 파혼한다는 그 사실을 질책하기보다는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딸을 다독인다. 그는 이미 맏아들 송준선(오대환)과 맏딸 송가희(오윤아)의 이혼을 겪었다. 그리고 또 이어진 파혼. 속이 속일 리 없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더 마음 아플 딸을 위로한다.

 

물론 송다희의 엄마 장옥분(차화연)은 놀란 가슴에 버럭 화부터 낸다. 그리고 송다희와 파혼한 남자친구를 찾아가 사정과 회유를 해본다. 하지만 그건 딸의 선택이 잘못 됐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다. 딸을 걱정해서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싸가지 없이 다희를 고집 세다, 눈치도 제로다 학벌도 모자라고 능력도 없고 여자로서 매력도 부족하다 말하는 이 남자에게 장옥분은 일갈한다.

 

“니들이 뭔데 결혼도 하기 전에 남의 귀한 딸 데려다가 설거지를 시키니? 시키기를. 이제 보니까 너한테 주기엔 우리 다희가 너무 귀하다. 이제 네가 달라고 사정을 해도 내가 안줘. 못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도로 한 복판에서 오열한다. 집으로 와 괜스레 딸에게 설거지 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속상할 장옥분을 남편 송영달은 다독인다. “잘 했어. 잘 정리했어. 우리 인생도 우리 맘대로 안되는 데 뭐. 자식들 인생이야 뭐. 우리 자식들 남의 자식보다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어. 그냥 운 없어서 닥친 걸 어떻게 해. 견뎌내야지.” ‘한 번 다녀온’ 송준선, 송가희와 언니 송나희(이민정)도 송다희를 위로한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며 파혼은 자신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라 말해준다. 하지만 파혼을 선언한 남자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언니 오빠는 그를 찾아가 통쾌한 복수를 해준다.

 

<한번 다녀왔습니다>는 이처럼 이혼과 파혼을 겪는 인물들을 가족이 다시 끌어안고 다독이는 모습을 담아낸다. 게다가 송나희 역시 과거 유산의 경험 때문에 관계가 멀어진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한다. 지금껏 보통의 KBS 주말드라마가 그려오던 흐름이 ‘결혼 권장’이었던 걸 떠올려 보면 이 드라마는 이혼과 파혼으로 시작하고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결혼을 했으니 그래도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결혼이나 현실이 받쳐주지 않는 결혼은 이혼과 파혼을 해서라도 나은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가족드라마.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아프지만 가족이 이를 든든히 지탱해주고 위로해주는 가족드라마. <한번 다녀왔습니다>가 그리는 건 가족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던 그런 가족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고 그것을 지지해주는 그런 가족이다.

 

사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비혼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버린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설 자리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드라마가 과거 가족주의 시대의 이야기들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결과다. 1인 가구가 급증해도 비혼이 늘어도 가족은 여전히 존재하고, 따라서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 가족의 양태와 역할을 담아낼 때 가족드라마의 존재가치 또한 분명하다. KBS 주말극 <한번 다녀오겠습니다>가 기대되는 건, 바로 그 색다른 가족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