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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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의생' 본격화된 핑크빛 무드, 어째서 더 설렐까

D.H.Jung 2020. 4. 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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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의생’ 이우정 작가가 그 흔한 악역 하나 심어두지 않은 건

 

여기저기 핑크빛이다.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멜로가 쏟아졌다. 신부가 되겠다며 결혼생각이 없는 안정원(유연석)을 짝사랑하는 장겨울(신현빈), 굳이 부대까지 찾아가고 놓고간 휴대폰을 직접 갖다 주며 이익순(곽선영)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김준완(정경호), 산모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에 양석형(김대명)을 혼자 좋아하게 된 추민하(안은진), 그리고 후배의사인 안치홍(김준한)의 “좋아한다”는 말에 당황하는 채송화(전미도). 러브라인이 본격화됐다.

 

의학드라마에서 갑자기 러브라인이 등장하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보통이다. 한때는 이런 드라마들을 가운 입고 연애하는 드라마라고 부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그런 비판보다는 이들의 관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걸까.

 

그것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담고 있는 것이 단지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의사로서의 사건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의사로서의 면면과 함께 그 의사가 가진 심성을 병원생활은 물론이고 병원 밖의 일상을 통해서도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정원은 소아과에서 오로지 환자의 입장만을 들여다보려는 따스한 의사지만, 사적으로는 줄줄이 신부와 수녀가 된 형과 누나들 속에서 자신도 신부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병원 내에서 상습적인 학대를 받은 아이를 발견해 그 아빠를 잡아넣는 진정한 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집에 오면 어르신들에게 마피아 게임을 알려주는 그런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멜로가 더더욱 설레고 나아가 그 관계를 응원하게 만드는 건 이 인물들이 저마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에이스로 ‘귀신’이라 불리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심성을 가진 채송화에게 어느 날 불쑥 다가온 안치홍은 후배지만 그 진지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고, 그래서 채송화 같은 인물 곁을 지켜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남다른 아픈 가족사를 가진 채 은둔형 외톨이이자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양석형은 그의 진정한 면모를 보고 좋아하게 되는 추민하의 그 발랄한 면면이 더없이 잘 어울려 보인다. 그 누구보다 따뜻한 안정원에게 그를 짝사랑하는 장겨울의 차가운 매력이 어울리고,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김준완에게 돌려차기를 할 정도로 보이시한 매력을 가진 이익순이 잘 어울린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이처럼 이우정 작가가 가진 등장인물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느껴진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 흔한 악역 하나 발견하기가 어려운 건 그래서일 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인간미가 드러나는 인물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서로 얽혀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더욱 몰입해서 보게 된다.

 

이런 관계가 주는 따뜻함은 여기 등장하는 안정원의 엄마 정로사(김해숙)와 야심가처럼 보였지만 야망과는 거리가 먼 그의 평생지기 주종수(김갑수), 의외로 허술한 매력을 드러내는 주전(조승연) 병원장 그리고 이들과 만나 오랜만에 많이 웃었다는 양석형의 엄마(문희경) 같은 기성세대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나이는 들었지만 의외로 아이 같은 천진함이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해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멜로는 이처럼 사랑 이야기 이전에 그 사람 이야기를 더해줌으로써 그 관계를 지지하게 만들고 있다. 저마다 홀로 버텨내고 있는 아픔들을 서로가 끌어안아주기를 기대하게 함으로써.(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