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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화양연화' 유지태·이보영, 정통 멜로의 설렘이란 이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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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청춘은 유지태와 이보영을 구원할 수 있을까

 

“찾았다. 윤지수. 내가 더 일찍 찾았어야 됐는데 너무 늦었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기차역. 막차가 끊겨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하는 윤지수(이보영)에게 한재현(유지태)은 그렇게 말했다. 윤지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렀다. 항상 가슴 한 편에 두고 있던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너무나 긴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그 시간 동안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윤지수는 도망치듯 역사를 빠져나오지만, 역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재현이 다가와 말한다. “기억 나는 거 별로 없는 선배라도 길잡이로는 쓸 만 할 거야.” 소리도 없이 쏟아지는 눈 길 위를 한재현이 앞서 걸아가고 윤지수는 그 시간의 거리만큼 떨어져 그를 따라 걷는다. 발자국을 따라서 잘 쫓아오라는 한재현의 말에 윤지수는 대학시절 앞서 걸어간 재현의 발자국을 밟고 따라 걷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치열한 삶이 자신을 마모시키기 전 풋풋하고 설렜으며 순수했던 시절.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가 보여주는 이 눈 내리는 날 재회한 윤지수와 한재현의 만남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시적이고 은유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대학 시절 눈처럼 벚꽃이 날리던 봄날 윤지수를 찾아냈던 한재현과 달리, 그들은 쏟아지는 눈 속에서 차도 끊겨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재회한다. 과거의 만남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던 밝은 설렘의 순간이었다면, 현재의 만남은 막막한 길 위에서 어디도 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순간이다.

 

그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윤지수와 한재현은 모두 감옥에 갔다 왔다. 하지만 그들이 감옥에 간 이유는 너무나 다르다. 윤지수는 유족들을 모욕한 이들에게 어떤 소신있는 행동을 보인 일로 감옥에 갔고, 한재현은 그의 장인이자 회장인 장산(문성근) 대신 감옥에 갔다 왔다. 윤지수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하고 있지만, 한재현은 장산의 지시대로 사측이 되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등 손에 피를 대신 묻히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현실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겪는 심경의 고통은 비슷해 보인다. 두 사람은 모두 결혼해 또래 아이를 둔 부모지만, 윤지수는 이혼해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고, 한재현은 마치 자신을 사냥개처럼 부리려는 장인과 그런 위세 그대로 마음대로 하려는 아내 장서경(박시연)과 불화를 겪고 있다. 윤지수가 현실에 치여 힘겨워하는 반면, 한재현은 자신의 부유한 삶에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삶이 꽃이 되는 순간’. 즉 ‘화양연화’는 이미 지나간 청춘의 시절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화양연화>는 힘겨운 현재와 꽃처럼 피어났던 청춘 시절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책방에서 그리워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그러다 만나기만 해도 행복했던 그 시절. 그런 시절은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꽤 오래도록 우리네 삶에는 차디 찬 눈들이 쌓였고 그래서 그 때의 이야기들을 덮어버렸다.

 

윤지수와 한재현은 이제 다시 만나 그 눈 위를 걸어간다. 그 장면은 아마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저마다의 화양연화를 추억하게 했을 게다. 너무나 멀리 와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추억으로만 남겨 뒀던 저마다의 화양연화를. <화양연화>는 바로 이 지점에 슬며시 발자국을 찍어 놓는다. “발자국 따라서 잘 쫓아와.” 한재현이 던지는 그 말이 윤지수의 가슴에 발자국을 찍어 놓은 것처럼.

 

과연 이들의 청춘은 그들이 현재 처한 현실을 구원해낼 수 있을까. <화양연화>는 이제 좀 먼 길을 걸어와 다시는 그 때로 갈 수 없다 절망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 때의 기억들이 현실의 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를 묻는 드라마다. 과연 윤지수는 한재현을 통해 현재의 그 불면의 삶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한재현은 윤지수를 통해 현재의 그 사냥개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두 사람이 현재에 복원해내는 청춘의 화양연화는 어쩌면 이들을 구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보는 정통 멜로의 설렘이다.(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