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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부부의 세계' 박해준과 이무생, 정말 모르겠는 한 길 사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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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딱 그렇다. 바람을 피워 이혼 당하고 결국 내연녀와 결혼해 가정까지 꾸린 이태오(박해준)는 어째서 지선우(김희애)를 자꾸 신경 쓰는 걸까. 그건 여전히 남아 있는 미련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애증 같은 것일까.

 

이태오는 지선우가 김윤기(이무생)와 가깝게 지내는 걸 자꾸만 신경 쓴다. 이미 이혼으로 끝나버린 부부 관계지만 이태오가 이러는 건 그의 엇나간 애정관 때문이다. 그는 과거 여다경(한소희)과 바람을 피울 때도 뻔뻔하게 두 여자를 다 사랑한다고 말했고, 사랑이 죄는 아니지 않냐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뻔뻔한 애정관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여다경과 꾸린 가정은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여다경은 자신이 저질렀던 불륜의 대가를 결혼 후 자신이 지선우의 입장이 되어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남편의 사무실을 염탐하게 하고 그의 서랍에 숨겨진 또 다른 핸드폰에서 지선우의 사진을 발견한 여다경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자신이 했던 일들이 부메랑처럼 돌아올 거라는 불길한 예감.

 

그런데 이태오는 박인규(이학주)를 사주해 지선우를 위협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고 또한 그의 부원장직을 물러나게 하는 조건으로 병원에 투자를 제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태오는 지선우를 동네에서 몰아내려 하고 받은 만큼 갚아주려 하는 복수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치거나 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는 너무나 유아적인 본능에 휘둘리는 인물처럼 보인다. 화가 나면 화를 내지만 또 그러면서도 질투를 하기도 하는 그런 이율배반적인 인물이 그다.

 

속을 알 수 없는 건 이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선우를 돕는 괜찮은 남자로 그려져 온 김윤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선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여병규(이경영)와 연결된 인물이라는 게 드러났다. 여병규는 은근히 김윤기를 부원장으로 밀고 있고, 그를 통해 지선우와 이태오의 현재 관계를 묻기도 한다. 과연 김윤기는 여병규가 사주한 인물일까. 아니면 여병규가 그렇게 믿게 만들면서 나름대로 지선우를 도우려는 인물일까. 그의 속내 역시 알 수가 없다.

 

<부부의 세계>에는 관계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지선우의 이웃인 고예림(박선영)과 손제혁(김영민)의 관계도 그렇다. 손제혁은 또 다시 바람을 피우고 있고, 고예림은 그 사실을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쇼윈도 부부처럼 보이지만, 또 “우리도 아이를 가질까”하고 묻는 손제혁 앞에서 고예림은 눈물을 쏟아낸다. 가식으로만 가득해 보이지만 때론 진심이 겹쳐지는 그런 관계가 이들의 부부 세계다.

 

상습적인 폭력으로 감방에까지 갔다온 박인규와 그가 다시 찾아간 민현서(심은우)의 관계도 애매모호하다. 민현서는 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 선을 긋지는 않는다. 그건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남은 미련 같은 것일까. 자신을 감방에 보낸 민현서를 찾아와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박인규도 마찬가지다. 그건 진심일까 집착일까.

 

<부부의 세계>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관계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만든다. 지극히 완전해 보이는 부부 관계가 실상은 완전히 깨져 있기도 하고, 이혼으로 끝난 관계지만 그 고리가 여전히 이어져 있기도 하다. 제 버릇 남 못주듯 계속해서 바람을 피우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허무함을 느끼며 아내 앞에 진심을 꺼내놓기도 하고, 재혼을 했지만 여전히 미련과 집착이 남아 전처를 신경쓰기도 한다. 그래서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부부의 세계>의 깊은 몰입감을 만든다. 지금껏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혹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그 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꺼내 보여주고 있으니.(사진:JTBC)